茶道美學

차글 모음

무진공방주얼리 2006. 2. 10. 01:01

출처:네이버블로그 도빈학당

*한위육조103가집 권6의 한 왕포의,

동약人+童約
촉군 왕자연王子淵이 일로 전상煎上의 과부 양혜楊惠의 집에 이르니 편료便了라 이름하는 한 사내종이 있어  술 사오라 하니 편료는 큰 지팡이를 쥐고 무덤꼭대기 올라가 말하길, 대부께서 편료를 살때 단지 총묘를 지킬것을 약속했지 타인남자를 위해서 술 사오기를 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자연이 크게 노해 말하길,
종을 차라리 팔렵니까?
양혜가 말하길,
종이 크게 사람을 거슬러 아무도 사려는 자가 없습니다
자연이 바로 매매권을 결행하겠다 운운하니 종이 다시 말하길,
시킬려는 것은 모두 매권 위에 올려주시고 권에 올려적지 않은 것은 편료는 할수 없습니다
왕자연이 좋다 말하고 권문券文에 말하길,
신작神爵 3년 정월 15일 자중資中의 남자 왕자연이 성도의 안지리安志里 여자 양혜가 파는, 망부의 때에 집에 따르던 구렛나루 수염의 종 편료로 부터 만오천의 값으로 파는 것을 결재한다 종은 온갖 부리는 일을 하고 두 말을 못하니 새벽에 일어나 물뿌리고 쓸며 식사가 마치면 세척하고... 자라를 굽고 차를 팽하며... 무양에서 차를 사며...단지 물마심이 마땅하고 술은 좋아 먹지 못하며 좋은 술을 마시려면 오직 당연히 입술을 물들이고 입은 적실뿐이며 사발 기울임과 두斗를 얻지 못하며 일이 마치고 쉬려면 당연히 한석을 찧어야하고 야반에 일이 없으면 옷을 빨고 당면해서 가르침을 들이지 않으면 매를 백대 맞는다
매권의 글을 두루 읽자 종은 두손을 묶어 눈물이 하락하고 콧물이 한자 길어서,
왕대부의 말과 같으면 일찌감치 황토 두렁에 돌아가 지렁이가 이마를 뚫게 되는 만 못하겠습니다

*작자 왕포王褒는 자가 자연子淵으로 한나라의 유명한 문학가다 내가 아직 이글의 전말을 잘 알지 못하지만 가만 보면 전수煎水라는 물기슭 위라는 지명의 뜻인 전상煎上의 煎은 차를 다린다의 전煎 이고 과부 양혜의 이름 혜惠 또한 차나 술 등을 베풀어 준다의 뜻으로 흔히 쓰이며 신작神爵, 안지安志 등의 말과 함께 고대에 노비에게 인권이라 말할 사정이 없었음을 고려해 이 글의 내용과 비춰볼때 아마 이는 실제 이런식으로 당시 통용했던 노비매매계약서의 한 유형이라 보기는 어렵고 아마 왕포가 입맛에 거스르는 차의 성질을 두고 역설적 내용으로 비유해 소설한 것이거나 혹은 이후 역시 왕포의 이름과 시대를 가탁해 지은 하나의 문학작품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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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구양수<1007-1072)

매요신이 차를 맛보는 것에 화함

시내산에 북을 쳐 우레가 놀라게 돕고
새벽에 신령한 싹이 취색줄기를 발하게 한다
따는 곳의 두 깃발 향이 가히 사랑스러운데
공납해 오는 쌍봉그린 차품은 더욱 정精하다
추위가 병골을 침입하니 오직 잠을 생각해
꽃 떨어지는 봄날 근심에 취함을 풀지 못한다
자주빛 잔에 음미하고 또 따루기 기뻐하시니
군의 소쇄함은 남은 맑음이 있음을 부러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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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매요신<1002-1060)

두상공이 채군모가 차를 보내준데 감사하는 것에 화하여 운을 따라 지음

천자 해마다 용배차를 맛보시니
차관리는 우전차를 재촉해 딴다
용단향은 이미 도읍의 관부에 들고
투품차는 다투어 태부의 집에 든다
작은돌에 찬샘은 이른맛을 남겨두고
자니紫泥의 신품新品은 봄꽃이 떳다
오땅 가운데 안 사람은 재주가 다소 있으니
이로부터 순나물국은 떠들 것이 없나니

*매요신은 송의 유명한 시인으로 구양수와 시우詩友였으며 같이 미려한 문체를 배격하고 질박한 문풍을 주장하는 문단혁신에 앞장섰으며 많은 차시가 전한다 이같이 자사기도 처음엔 질그릇의 질박함을 바탕으로 사인에게 비롯 한 것인데 점차 차그릇으로 대중화 되면서 명말부터 역시 도리어 교묘한 장식과 조형의 기교를 다하여 발전하면서 고가품으로 변해 간 것이니 초기 매요신 같은, 지금도 이른바 막사발을 쓴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와는 전혀 달라진 것이라 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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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증기<1084-1166)

건자가 용단승설차 두 차과를 얻어 이로 내게 돌리는데 그 값이 만전이라 운운

移人尤物衆談誇 / 사람을 옮기는 우물尤物을 무리들이 말해 떠드는 것을
지니고 뜰을 쫓아 걸으니 뜻이 가상하다
스스로 변변한 찬거리도 없는 집에
용단차는 헛되이 천, 만의 차나무에서 취했다
삶아 맛봐 바로 괴이한 재앙을 이룰까 염려되어
쥐고 완상하니 어찌 능히 등차를 정할수 있으리
전현의 소용단을 대한 예에 준하니
한 주머니 깊이 저장해 다만 집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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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주휘의 청파잡지 권6에

강연명이 장안의 지휘관이 되어 채경에게 말씀을 구하니 채경이 말하길
"공이 그기 이르면 또한 냉차를 마시리"
장안의 기적에 오른 기생의 보무가 작아 다님이 더디어 경과한 차가 반드시 식는 것을 이름이다 처음에 까닭을 모르다가 뒤에 그기 풍습을 당해 익혀 보고야 알았다

*여거인의 헌거록에,

강연명의 자는 은계로 장안을 수帥하게 되어 태사 채경에게 말씀하니 채경이 희언해 이르길,
"공은 지금 냉차 마시러 가는 것이요"
강연명은 이해를 못했으나 감히 발설해 묻지 못하고 친척간에 장안의 풍물에 익숙한 자 있어 인해 이 말로 방문하니 이에 웃어 말하길,
"장안 기녀의 보무가 극히 작아 다님이 모두 더디고 느슨해 이에 냉차를 마신다는 희언이 있는 것이요"

*이땐 더우기 바로 타서 익혀 마시는 말차末茶이기 때문에 차 마시기에서 냉온이 더 주의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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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화시집에 실린 진애陳崖의,

김지차 / 김지차
구화산에 난다 서로 전하길 김지장이 서역으로부터 지녀온 것이라 한다

瘦莖尖葉帶餘馨 / 여윈줄기 뾰족한 잎이 넉넉한 향을 띠었고
細嚼能令困自醒 / 잘게 씹어 곤함을 능히 깨게한다
一段山間奇絶事 / 일단은 산간의 절대 기이한 일이니
會須添入品茶經 / 모름지기 차경에 첨입하여 품해야 하네

*유월의 차향실총초 권21 "민차"에서,

민차는 둘이 있으니 하나는 구화산에 있다 서로 전하길 김지장이 구화산에 지팡이를 세우고 머무르니 민장자의 집이 산속에 있어 성품이 보시를 기뻐했다 김지장이 나아가 하나의 가사를 둘 땅을 구하여 드디어 민씨 전원의 산택일대를 다 했다 장자가 말하길, 이미 후회없음은 수락했으나 다만 나는 어느 땅에 둘까요 하니 지장이 단사를 땅에 뿌리고 장자로 하여금 집을 닫게하고 이로 흰해가 집을 뽑아 날아 오르게 했으니 그 집은 지금 부처의 전당이 되고 그 밭두둑도 지금 민원이라 부른다
하나는 휴녕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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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호자의 초계어은총화전집 권제 22에,

서청시화에 이르길, 당 이상은의 의산잡찬 품목 수십가지가 대개 골계담의 글로서 그 하나를 살풍경이라 말하니,
맑은샘에 발씻기,
꽃아래 바지 볕쬐기,
산을 등져 다락을 일으키기,
거문고를 불때 학을 삶기,
꽃을 대해 차를 마시기,
솔 아래서 길 여는 벽제소리를 외치기를 이르는 것이다
경력년간에 안원헌이 재상직을 그만두고 영땅의 수령을 했는데 혜산샘으로 일주차를 팽차하고 조용히 술을 갖추어 두고 시를 부賦해 이르기를,
"회계산은 새차로 녹색이 연무 같고
고요히 차끓이는 그릇 저장상자를  당겨 혜산샘을 삶는다
인간의 살풍경을 향하지 않고
더우기 술지게미를 지니고 꽃앞에 취하네"
또 원풍 말년에 왕안석이 금릉에 거주할때 대조 직위의 장지기가 밤에 공을 장산에서 뵈었는데 길 여는 벽제 소리가 심히 대단했다 공은 "솔아래서 물렀거라 외치다"를 취해 시를 지어 희언해 말하길,
"쇠한 몸 부축해 남쪽밭둑에서 긴 가래나무를 바라보니
등불이 별 같이 온땅에 가득 흐른다
다만 살풍경이라 전해 부르는 것을 괴이해 하니
어찌 선객禪客이 밤에 서로 투합함을 알리"
이로부터 살풍경의 말이 자못 세상에 전해졌다
삼산노인어록에는 이르길, 당나라 사람은 꽃을 대해 차 마시는 것을 살풍경으로 여겼기에 왕안석이 평보에게 주는 차를 보내며 라는 시에,
"금곡원에 꽃을 보며 마구 다리지 마라" 는 구절이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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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유의 입촉기에,

채군수에게 가서 단양루에서 밥먹는데 열이 특히 심해 얼음을 쌓아 자리에 채워도 전혀 시원한 뜻이 없고 채씨는 손수 점차함이 자못 공교한데도 차는 아주 아래였다 동석한 웅교수는 건녕인으로 이르기를,
건차는 예전에 쌀가루를 섞었다가 다시 마로 고치고 두 해 이래로 또 저나무 싹으로 고쳤으니 차맛과 자못 서로 들이고 게다가 젖됨이 많으나 매우철을 지나면 기미가 다시 없으니 정밀히 아는자 아니면 쉽게 살피지 못합니다

*이땐 말차 또는 역시 말차를 병단형으로 만들어 다시 떼어 갈아 마시는 것이니 마는 산약이라고도 부르는 풀뿌리덩이로서 이 것의 가루를 차에 섞어 만든 것을 말하는 것이며 저楮 나무는 종이 만드는 닥나무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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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기담에,

객이 이르면 차를 베풀고 가려하면 탕을 베푸는 것이 어느때에 기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위로는 관부에서 아래로는 여염에 이르기까지 혹 폐함이 없다 무신으로 양응성이란 자가 있어 홀로 말하길,
객이 이르러 탕을 베푸는 것은 이는 사람에게 약을 먹이는 것이다 옳지 않다
그래서 그의 집은 매번 객이 오면 흔히 꿀에 오렌지나 모과를 재워서 탕을 해 객을 마시는데 혹 어딴자는 본받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 이른다 대개 객이 앉았기 이미 오래면 혹 그 말이 상한 기미가 많을까하니 그러기에 그가 혹 가려 하면 탕을 먹이니 앞사람의 뜻이 반드시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혐의스러울것은 못된다

*남창기담은 작자와 시기가 미상한데 사고전서의 총목제요에서는 양송간의 글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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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金史 식화지 4에

선종 원광 2년 3월 성신省臣이 나라가 쪼들리고 재력이 고갈하는 것으로 아뢰어 말하길,
"금폐金幣와 금전, 곡식은 세상에서 하루도 결핍할수 없는 것입니다 차는 본래 송나라 땅에서 나서 음식의 급한 것이  아닌데도 예전부터 상인이 금과 비단으로 바꾸니 이는 헛되이 소모하는 것입니다 태화년간에 일찌기 금해 그친 적이 있고 뒤에 송나라 사람이 화친을 구하여 이에 파했습니다 병기의 일이 흥한 이래 다시 거행했사오나 범하는 자가 조금도 쇠하지 않고 변두리 백성은 또 이익을 엿보아 월경해 사사로이 바꾸니 인해서 국정이 누설될까 두렵고 혹 도적이 지경에 들까 합니다 지금 하남, 섬서, 무릇 오십여군에서 날로 먹는 차가 대략 스무푸대로 한 푸대의 값이 은 두냥이니 이는 일년에 헛되이 백성의 은 삼십여만냥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의 유용한 재화로 적을 보태준단 말입니까"
이에 친왕과 공주 및 현직 오품이상 관리로 평소 저축한 것은 그대로 두고 팔거나 주지는 못하게 했으며 나머지 사람은 아울러 금했으며 범하는 자는 도형 5년을 살리고 고발자는 보천전 일만관을 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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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원각의 징회록에,

채군모가 탕은 눈약한 것을 취하고 늙은 것은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개 단병차를 발해 내는 것을 이른 것이다 지금의 기아旗芽, 창갑槍甲은 탕이 부족하면 차신이 스며 나오지 않고 차색도 밝지 않다 그래서 명전의 승첩은 더우기 오비五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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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홀사혜의 음선정요 권 2에

무릇 여러차의 맛은 달고, 쓰며, 미미히 한寒하며 독없다 담과 열을 제거하고 갈증을 그치고 소변에 이롭고 먹이를 풀고 기를 내리며 정신을 맑게하고 잠을 적게 한다
청차淸茶: 먼저 물을 부어 대고 여과해 깨끗히 한 다음 차를 넣고 잠시 다려 이룬다
초차炒茶: 쇠솥으로 붉게 굽고 마사가유, 우유, 차싹을 같이 볶아 이룬다
란고: 옥마말차 세숟갈, 면소유를 같이 고루 저어 이루고 끓는 탕을 점주한다
소첨酉+禾簽: 금자말차末茶 두숟갈에 소유소첨酉+禾油를 넣어 같이 저어 끓는 탕에 점주한다
건탕建湯: 옥마말차 한숟을 완에 넣어 고르게 연마하고 백비탕을 점주한다
향차: 백차 한푸대에 용뇌의 편片으로 이룬 것 3전과 백약전 반전, 사향 2전을 같이 곱게 갈아 향있는 찹쌀을 고아 죽을 만든 것에 고루어 조제해 떡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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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이일화의 육연재3필 권1에,

고려의 의원은 질병을 다스리는 약을 씀이 단미, 양미에 그치고 세가지에 이르면 극히 많은 것으로 네가지는 있지 않다 대개 약성이 오로지이면 달達하고 두가지면 제濟하고 셋이면 조調하고 넷이면 참參해 섞이는 것인데 더불어 제약하고 여기 다시 많으면 서로 뺏아서 공을 아뢰지 못한다 우연히 학질과 이질의 두 처방이 심히 간단하면서 효험이 있는 것을 전했으니 지금 여기 적는다
이질을 다스리는 것은 이미二味에 그치는데 색이 흰 백리는 추위를 우환하니 생강 한냥과 정세한 차 오전을 쓰고 색이 붉은 적리는 열을 우환하니 정세한 차 한냥과 생강 오전을 쓰고 붉고 흰것이 섞인 적백리는 생강과 차를 각자 오전하여 하수河水 두 완을 다려 일완에 이르면 따뜻이 복용한다
학질은 오래고 가까운 것을 물론하고 하수오 날것 오전, 청피靑皮 삼전, 진피 이전, 술 일완, 하수河水 일완을 다려 일완에 이르러 따뜻이 복용하면 바로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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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왕응규의 유남속필 권2 제 157항에

벽라춘碧螺春
동정산의 동산 벽라봉 석벽에 야차 몇그루가 나서 해마다 사인士人이 대광주리를 지니고 따오는 것이 수십년을 지나며 이 같이 하고 그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강희년간의 어느해에 시후를 보아 따는데 그 잎이 비교적 많아 광주리에 이루 다 담지 못해 품에 놓으니 차는 열기를 받아 남다른 향이 홀연히 발해 차를 따는 자는 다투어 "혁살인향"이라 불렀다 혁살인향이란 것은 헉! 놀래 사람 죽일듯한 향이란 뜻의 오땅의 방언이다 인해서 드디어 이 이차의 이름을 했다 이른다
이로부터 매번 차를 따면 사인, 남녀노소가 힘써 반드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어 온 집이 다 가서 광주리에 채우지 않고 모두 품안에 두었다 사인 주원정이 홀로 제법에 정精해서 그 집에서 나온 것은 더욱 묘품이라 일러 매 근마다 값이 석냥어치다 기묘년에 어가가 태호에 행차하니 송공이 이차를 사서 진상하니 상은 그 이름이 정아하지 못해 벽라춘이라 이름지어 말했다 이로부터 지방의 큰 관리가 해마다 반드시 따 만들기 힘쓰는데 파는 자는 왕왕 가짜로 참을 어지럽혔다 주원정이 죽자 제법이 전하지 않아 바로 참인 것도 일전의 것만 못하게 되었다

*주침의 동정동산물고에,

차에 명전 우전의 이름이 있으니 따는 일의 더디고 이른 것으로 인해 거칠고 잗다란 것을 구분한 것이다 여명에 차를 따니 손톱을 써  여린싹을 끊어 따고 손으로 비따지 않으며 광주리 안에 두고 젖은 베로 덮어 그 시들어 타는 것을 막아서 집에 돌아와 가지와 줄기를 가려 제거하고 또 여리고 뾰족한 한잎짜리와 두잎을 구분하는데 혹 여리고 뾰족한 것이 한잎이 연이어져 일기일창이 되는 것을 그에 따라 가려서  만든다 작법은 깨끗한 솥에 잎파리 너댓냥을 넣고 먼저 문화를 써고 다음 조금 왕성히 해서 두손을 솥에 넣어 급급히 볶아 굴린다 반쯤익는 것을 정도로 한다 과숙하면 타서 향이 흩고 부족하면 향기가 투철하지 못한다 볶아 들어올려 자기동이 안에 넣는데 곁에서 부채로 부친다 그렇지 않으면 색이 누렇고 향이 감한다 벽라춘에는 흰털이 있는데 다른차는 없다 벽라춘은 용정차 등에 비해 향 나지만 맛은 박해서 우리면 세 차례에 불과하다 마시면 청량하고 술깨며 잠을 푸는 공이 있다 씨뿌림은 산의 땅이 마땅하고 비옥한 토양을 기뻐하지 않는다

*벽라봉,벽라춘碧螺春의 라螺는 글에 따라 흔히 덩쿨식물을 말하는 라蘿로 써 있는데 아마 원래는 녹색덩쿨의 봉우리라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뒤에 여기 소산하는 차의 제법된 것이 벽색에 소라처럼 둥글게 말렸기에 벽라춘碧螺春으로도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나라 서가의 가연에는 말하길 각 성에 소산하는 녹차는 짙은 벽색은 드물어 벽라춘碧蘿春도 항주의 용정차처럼 그렇게 깊은 벽색은 아니라 했다 그러나 이전의 명나라때의 한 기록에는 용정차는 심히 청취하지는 않고 좀 검어 천지차보다 덜 푸르다 했으며 한편 구한말 안종수의 농정신편에 보면 지금 흔히 녹차라 통괄해 부르것 중에 대표적인 수제차로서 단지 뜨거운 열솥에 볶아 제법할 뿐인 것은 중국식차란 의미의 당차唐茶라 말하고 있으며 녹차라는 개념은 따로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원래 녹차로 유명한 용정차를 말한 청말 정육의 용정방차기에 보면 약간의 차를 한솥 제법해 내는데 드는 시간이 무려 30분이라고 하고 있다 즉 바꿔말하면 비록 중국의 당시 일반적 제법방식인 당차처럼 열솥에 가공한다해도 이는 볶는게 아니라 예전에 빨은 외출복이 아직 마르지 않아 입고 나가야 할때처럼 솥의 미미한 열에 불말려 마치 볕쬐 가공하는 차 처럼 단지 열솥을 이용해 푸르게 덖어 배화할 뿐인 것이다 이는 아마 서양에 다투어 차를 수출하면서, 특히 당시 미국에서 녹색차를 좋아해 구매한데도 기인하지 않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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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서가, 청패류초에

티벳의 차무茶務
티벳사람은 음차를 좋아하니 평일에 모두 소와 양의 고기를 먹어 마시지 않으면 배가 불러진다 심지어 소와 말도 반드시 마신다 그래서 차의 소모가 심히 많다.

차잎의 대황大黃을 서로 저자함
서북유목민의 여러 부락은 차 보기를 제 2의 생명으로 여긴다 대체로 그 날마다 먹는 것이 누린 낙젖으로 심히 살찌고 미끄러워 이것이 아니면 맑게 영위해 소화를 도울수 없기 때문이다 객이객 지역과 몽고의 회교부락에는 우러러 받게 되지 않음이 없다 서양의 상선이 중국에 오면 수요하는 물건이 또한 오직 차를 급히 한다 아라사는 또 우리나라의 대황을 진귀한 약으로 여겨 그 들이는 입구는 흡극도 라는 곳인데 정부에서는 일찌기 그 조약을 어긴 것으로 해서 대황의 출구出口를 금지 시켰다가 뒤에 처음과 같이 회복했다.

녹차제조
녹차의 제법은 장차 따 내린 여린 잎을 찌는 바구니에 넣어 찌고 혹 솥안에 넣어 볶는데 잎이 끈적여 붙으며 향을 내는 때에 이르러 바로 취해 내어 평평히 깔고 부채질해 식히며 다시 배화하는데 넣어 배화하고 유념해서 점차 건조하게 하고 다시 화력이 조금 약한 배화로에 넣어 반대로 엎어 유념해 마찰해 십분 건조해 진 뒤 그친다
기문, 무원, 건평 세 현의 좀전까지 낸 녹차는 그 제법의 순서가 무릇 다섯이니 하나는 푸르게 말리는 것이고 둘은 비벼 유념하기 셋은 발효 넷은 배화해 불쬐기 다섯은 체질해 나누기.

오룡차 제법
오룡차는 민, 월 등의 곳에 소산하는 홍차다 생잎을 볕쬐 말려 누렇게 변한 뒤 구시통안에 두고 유념해서 불쬐어 열하게 하고 재차 미약한 불의 솥에 옮겨 유념해 맺고 베로 가려 덮어 발효해 붉게 변하게 해서 이룬다 향과 맛이 농울해 차 가운데 상품이다.

어느 부호옹이 차 마시기를 좋아함
조주의 어느 부호는 차를 좋아함이 우심했다 하루는 거지가 이르럼이 있어 문에 기대어 서서 부호를 흘겨보며 말하길 군의 집에 차가 심히 정精하다 들었는데 한잔 하사해 줄수 없겠습니까? 부호가 비웃어 말하길 너는 걸인으로 또한 이를 이해 하는가? 거지가 말하길 나도 일전엔 부자였는데 차로 파가했습니다 지금도 처자가 오히려 있어 구걸을 행하는데 힘입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자는 인해서 차를 짐작해 주니 거지는 마시기 다하자 말하길 차는 실로 가佳한데 아깝게도 극히 순후하지는 못하니 대체로 차호가 너무 새것인 까닭입니다 내가 호를 하나 가지고 있으니 예전에 늘 쓰던 것으로 지금 나길때는 반드시 지니고 다녀 비록 얼고 주려도 일찌기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찾아서 보니 실로 정절해서 색이 검스럼하고 뚜껑을 열면 향기가 맑고 차와 부지 불각에 애모했다 빌려 전차하니 맛이 과연 맑고 진국이어 일상품과 달랐다 인해서 구입하려 하니 거지가 말하길, 나는 모두  팔지는 못하고 이 차호는 실로 삼천금의 값어치 인데 지금 당연히 반을 팔아 군에게 주니 군은 나에게 일천 오백금을 주시고 취해서 집의 일에 베풀어 두시면 바로 가능한 때에 군의 재실에 이르러 군과 더불어 차를 마시며 청담하며 같이 이 차호를 누림이 어떻겠습니까? 부호는 흔연히 승락해 거지는 금을 취해 돌아가고 이 뒤로부터 날마다 그 집에 이르러 대좌해 팽차해서 연고있던 사귐 같았다.

몽고인의 차 먹음
차는 음료인데 몽고인은 이에 먹이로 하고 물을 더해 삶지를 않는다 소용하는 것이 전차塼茶가 되어 번번히 소고기와 우유 안에 놓고 잡되게 다린다  그 평일 비록 육식에 치우쳐도 괴혈병에 우환하지 않는 것은 또한 이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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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심태의 월유소식

조주에서는 더욱 차를 좋아 마신다 그 차잎으로는 대배大焙, 소배, 소종, 명종, 기종, 오룡 등의 여러 명색이 있는데 대저 색, 향, 미 세가지가 겸비된 차를 맹신이 제작한 의흥호로 크기가 호도한 것에 차잎을 가득 채우고 야문 탄으로 탕을 다려 끓는 물의 기포가 게눈처럼 생길때 호 안에 우린다 이에 우묵한 찻잔으로 높이 한치 맘짓의 잔을 취해 대략 서너그릇에 고루 짐작하고 매번 한순배마다 차를 조금 남짓 마시고 다시 우리고 다시 짐작해 몇잔하니 차가 가득 차 향과 맛이 나온다 그 이름을 공부차라 말한다 혹독히 좋아해서 파산하는 자가 심히 있다

*공부차는 민(복건), 월(광동,광서)지방에서 주로 무이차로 비롯해 유행하던 일종의 차를 품미하는 일로서 아마 차공부를 한다는 뜻으로 불린 말같다 민, 월은 남중국의 열습한 풍토인데다가 조주는 땅이 낮고 습해 더욱 차가 생활음료로 밀접히 수요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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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양봉조 편집, 황조경세문신편속집 권7에,

중국차업의 손실과 이를 보완해 구하는 방법을 논함
중국차업의 쇠락이 극에 달했다 수출의 수가 날로 줄고 달로 감하니 그 까닭은 무었인가 대체로 인도와 실론이 신제법으로 차를 제조해 외관이 빛나고 값이 적절하니 중국차가 드디어 가리어 지고 중국이 이익을 뺏기는 바가 되었다......
인도, 실론의 차 따기는 일을 택함이 오직 근실해 차싹이 처음 나올때 바로 차나무의 해를 향한 곳을 대해 그 한모양이고 아울러 잎이 큰것을 취할뿐 본래 두춘 등의 기호로 구별하는 것이 없고 일기이창으로 명명하는 교묘함도 없다 이미 따고 난 뒤는 창고에 거두어 쌓아 제조를 기다리는데 광주리에 무더기 쌓고 무리별로 모아 여러차가 따 가지런해지기 기다려 막 기계를 이용해 제조하니 곰팡이의 썩는 우려도 없고 정미精美한 맛이 있고 차색은 이미 진하고 차의 향은 더욱 열렬하다
(서양인의 차 좋아마시는 것을 감안하면 그 실은 차맛을 모르고 다만 물을 부어 일차 우릴뿐으로 오히려 색이 묽은 것을 꺼려하여 혹은 커피법처럼 차호에 넣어 삶는다 그래서 무릇 중국에서 귀히하는 녹차의 가품은 도리어 맛없이 여기며 바로 백호차 아미차 등과 같은 것은 또 입에 쓰서 방치하고 반대로 오룡차 공부차 등을 숭상하고 다음은 꽃향, 홍매 등이 모두 가품이 되어 좋아 높이는 것이 같지 않으니 어찌 천하의 입맛이 서로 비슷하다 이를 수 있으리 지금 계책하여 차의 이익을 다투려면 그 좋아하는 것에 투합하는 것이 방해 될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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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누어 다섯직무로 하니 하나는 채적할 차를 거두어 관리하기 이고
둘은 곧 잎을 두룩 마는 기계이며
셋은 잎이 맛을 발하게 하는 것이며
넷은 잎을 배화하기
다섯은 분배해 속에 넣고 포장하기 등의 일이다 이외에 다시 장인을 고용해 각 기구를 관리하기와 여기 저기 차잎을 끌고 왔다갔다 하는 것일 뿐인데 그 거두어 들인 채적한 잎은 창고에 쌓아두고 일기를 논할것 없이 상자에 넣어 분배함에 모름지기 정밀히 잘 포장해 넣고 이로 운반해 싣기를 기다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능히 차잎이 출산하는 땅에 설치해 생잎을 멀리 운반하는 운임을 절약하는 것이니 과연 이같이 할수있으면 목전에서 바로 이익을 얻을수 있으며 장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는 영국의 개인 상인의 말에 따른 것이니 그 스스로의 계책이 실로 좋은 것이다 생각컨데 중국이 지금 차값이 비록 싸고 차업이 비록 실패해도 차나무가 아직 많아 차잎이 적지 않으니 능히 법대로 채적해 그 맛이 발하기 기다려 두룩 말을수 있을것 같다 반드시 맛이 발하기 기다리는 것은 이는 화학가가 끼친 법에 관계하니 맛이 발하고 난뒤 배화하면 비로소 능히 나무의 시그러운 유질油質이 나온다 한다
(산酸이란 것을 감안하면 강한물의 맛이다 무릇 나무질의 물건은 반은 날것이고 반은 썩으면 곧 능히 이맛을 발한다 우리사람은 보기를 곰팡이의 썩는 것으로 여기는데 서양인은 도리어 이를 좋아 마시니 이는 마땅히 우리차가 이익을 얻지 못함이며 이 이익을 도모하려면 부득불 그 좋아하는 바에 투합하지 않을수 없다 옛날 우임금이 남만국에 옷벗고 입국했다는 것처럼 이는 유력자가 도모하는데 있다)

*여기서 서양인의 차마시는 것에 대한 이해는 역시 초의가 동차송에서 지리산 승려의 차음에 대해 비판한 것 처럼 자신의 측면에서 미처 넓게 통찰하지 못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중국에서도 이전의 말차시대에는 그 차가 결코 묽은 것이라 할수없고 이때도 북중국은 물론 일부 남쪽지방에서 차가 생산되는 조선에서도 음차 방식이 주로 지금 보리차 방식처럼 편차를 솥에 넣어 삶아 다갈색으로 내는 것이었다 이것을 단지 차가 서툰지역이어 그렇게만 볼수 없는 것이 오히려 남중국은 땅이 열습해 날물을 마시기 부적합해 차를 북쪽의 물마시는 대용으로 쓰다시피한다 하니 따라서 예를 들어 술을 식수 대신 쓰는 지방의 경우 마찬가지로 막걸리나 맥주처럼 묽어야 하기 마련이다 이것을 다른 지역에서는 진하게 가끔 한번에 마시고 치운다는 식으로 탓할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차가 보관한 기간이 길어지며 그 요소가 산화되고 짙게 다려 적갈색으로 나타나는 것이 부패한 것과 동일시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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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기균의 오로목제잡기에,

가명佳茗은 쉽게 구하지 못하고 토인이 오직 부차附茶를 마신다 이르기를, 이 땅은 물이 차와 위가 상하는데 오직 부차가 성질이 따뜻해 능히 푼다 한다 부차란 것은 상인이 관의 제도로 말과 차를 바꾸니 인해서 붙어 운송된 것이다 처음 다리면 색이 호박같고 다리기 조금 오래면 검기가 검정 미석美石같다

*지금 내몽고지역을 두고 말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