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관련기록/ 홍차제법설략
출처:네이버블로그 도빈학당
보이차관련기록/홍차제법설략
*장홍의 진남신어에,
진차水+眞茶
진땅의 차로 몇종류가 있어
성행하는 것을 목방차라 말하고 보이차라 말하니 목방은 잎이 거칠고 맛이 떫어도 단團을 만들어 보이차의 이름을 씌워 밖으로 모르게 팔으니 그 땅이
서로 가까움에 인해서 인데 맛은 스스로 열등하다
보이차의 진품은 모첨毛尖, 아차芽茶, 여아차女兒茶의 호가 있으니 모첨은 곧 우전에 딴
것으로 단을 만들지 않으며 맛은 담백, 향이 연꽃 같으며 새로운 색이 여린 녹색으로 가히 사랑스럽다
아차는 모첨차보다 조금 장성해서 따서
가공해 단을 이루는데 두냥과 넉냥의 비율로 한다 진땅의 사람이 중히 여긴다
여아차도 아차 종류인데 곡우뒤에 따서 한근에서 열근으로 각기 한
단團을 한다 모두 오랑캐의 부녀가 따서 가공해 은으로 무역해 이를 저축해 화장값의 자료로 하기에 이름한 것이다
위의 세가지는 연례로 공납에
채우고 그 나머지 거친 보이차잎은 모두 흩어 진땅 안에 파는데 가장 거친 것은 고아서 고膏로 해서 떡을 만들어 권모圈模에 찍어 먹이고 보내 주는
것에 갖추지만 해마다 바치는 것 중에도 여아차고茶膏가 있고 아울러 예주차도 진상하니 차는 녹풍산에서 소산하고 꼴은 감로자 보다 조금 작고 잎이
아니라 차나무의 맹아가 돋은 것이다 가히 열병을 물리친다
또 차가 순녕부의 옥황묘玉皇廟 안에 나는 것으로 일창일기인데 색이
보벽색寶碧色으로 항주의 용정차와 다르지 않으나 오직 향이 지나치게 열렬해 도리어 입에 맞지 않음을 느끼며 성질이 또 극히 차갑고 맛은 쓴데
가까와 용정의 중화中和한 기가 없다
이서의 양궁과 검천, 려강의 여러 변두리 땅 같음은 괴목과 버들에 기생하는 것을 따서 차를 대신하는데
오직 이서인이 달게 여긴다
*진은 운남에 있던 옛 나라로서 운남의 다른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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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췌의 진해우형지 권11에,
보이차의 이름은 천하에 중하다 이는 운남에
소산하는 것으로 이로움의 바탕이 되어 이에 백성이 힘입게 되는것이다 보이부 소속의 여섯 차산에서 나니 하나는 유락산, 둘은 혁등산, 셋은
의방산, 넷은 망지산, 다섯은 만전산, 여섯은 만살산이라 말하니 두루 팔백리다 산에 들어 차를 만드는 자가 수십만명으로 차객茶客이 수매해 각처에
운반하니 매번 길을 메운다 가히 큰 금전과 양식이라 이를 만 하다
일찌기 보이차가 어느때부터 드러났는가 의문했으니, 남송시대가 되고 난
뒤 계림의 정강군靜江軍에서 차로 티벳의 말과 무역했으니 이는 운남에는 차가 없었음을 이른 것이다 그러기에 범공이 계림에 대해 기록할때도 자신이
마정馬政을 맡았으나 티벳의 차 소유를 말하지 않았고 이석의 속박물지에는 이르기를,
차는 은생부의 여러산에 나니 때없이 따서 후추와 생강을
섞어 삶아 마신다
했으니 보이는 옛날 은생부 지역에 속했다 그러면 티벳의 보이차를 씀이 이미 당나라때 부턴데 송나라 사람은 모르고 오히려
계림에서 차로 말과 무역했으니 운남에는 마馬가 나오지 않았음이 마땅하다 이석은 당시에 견문한 바가 없이 그가 한 기록이 증조, 단백 등의 여러
사람에게 끼쳤으니 단백은 송나라 소흥년간의 시대를 당해 오히려 나의 먼 선조인 단탁의 묘지墓誌를 한 것이 아직 있고 그 일이 운남의 일을 적은
것이 자못 많아 족히 사료의 결함을 보충한다 이른다
차산에는 차왕수茶王樹가 있어 다섯 차산 것보다 홀로 큰데 본래 제갈량이 남긴 종자로
지금 오랑캐 백성이 향사한다 의방과 면전의 차맛이 비교적 낫고 또 순녕에는 태평차가 있어 세윤細潤함이 벽라춘 비슷하며 능히 세번 우려기 거쳐도
오히려 맛이 있다
대리부의 감통사에 차가 있고 운남성의 읍성에 태화사 차가 있다 그런데 나는 것이 많지 않아 보이차의 성함만 같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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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복의 보이차기
보이차기
보이차 이름은 천하에 두루하니 맛이
가장 진하며 연경에서 더욱 중히 여긴다 완복이 운남에 와서 운남통지를 살펴봐도 그 상세함을 얻지 못하고 다만 이르기를 유락, 혁등, 의방,
망지, 만전, 만살 등 여섯 차산에서 나는데 의방, 만전의 것이 맛이 가장 낫다 이를 뿐이다
완복은 보이부가 옛날 서남오랑캐의 가장
변두리땅이 되어 역대로 내지에 붙은 적이 없음을 고찰했으며 단췌의 진해우형지에는 이르길,
"일찌기 보이차가 어느때부터 드러났는지 모른다
송나라 범성대가 말하길 남쪽으로 건너오고 계림의 정강군이 차로 티벳의 말과 바꾸었다 했으니 이는 진남에는 차가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석의
속박물지에는 일컫기를......"
이석 또한 남송사람이다 본조의 순치 16년 운남을 평정하여 나추가 귀歸附했다가 바로 반란해 복주伏誅되고
지역이 두루 원강통판에 예속되니 이로 소속된 보이 등의 곳, 여섯 큰 차산의 땅을 들이어 보이부를 설치하고 아울러 분방分防을 설치했다 사모현의
지사가 사모에 주재駐在하니 사모는 운남부의 읍치에서 120리 떨어져 있다 소위 보이차라는 것은 보이부 경계안에 소산하는 것이 아니고 대개 속한
사모청思茅廳의 지경에 나는 것이다 사모청 관할에 차산의 여섯곳이 있으니 의방산, 가포산, 습공산, 만전산, 혁등산, 역무산이라 말하여 운남통지에
실린 것과 이름이 서로 다르다
완복은 또 공납차의 서류를 검사하니 매년 공납차가 포정사布政司의 곳간 동식항목 아래에 상례를 두어 은
일천냥을 사모청에서 수령해 가서 차 따는 판공비로 굴려 쓰고 아울러 차를 거두는 주석병관과 주단, 목갑및 나무상자 등의 비용을 두는 것을 알았다
그 차가 사모 지경에 있으니 본지의 신선한 차를 딸때 모름지기 서너근의 신선한 차로 막 한근반차를 만들수 잇다 매년 공납에 갖추는 것은
닷근쭝五斤重의 단차團茶, 세근쭝 단차, 한근쭝 단차, 넉량쭝 단차, 한냥닷전쭝 단차이고 또 병에는 아차, 예차를 채우고 갑匣에는 차고茶膏를 채워
모두 여덟색이니 사모현의 지사가 은을 수령해 이어 받들어 판공辦公한다
사모지고에 이르길, 그 다스리는 곳인 혁등산에 차왕수가 있어 뭇
차나무 보다 비교적 높고 큰데 토인이 차 딸때를 맞으면 먼저 술과 단술을 갖춰 여기에 제례를 드린다 하고 또 이르기를 차가 여섯 차산에 나는데
기미가 토성에 따라 달라 붉은 흙 혹은 흙속에 잡석땅의 차가 가장 나아 먹이를 풀고 추위를 흩으며 독을 푼다 이월간에 꽃부리의 가장 잘고 흰
것을 따니 모첨이라 이르고 이로 공납차를 만든다 공납 뒤에야 민간에 판매가 허락되니 따서 찌고 비비어 단병團餠을 만든다 그 잎이 좀 펴여져도
오히려 여린 것은 아차芽茶라 이름하고 삼사월에 따는 것은 소만차小滿茶라 이름하고 칠팔월에 따는 것은 곡화차라 이름하고 크고 둥근 것은
긴단차緊團茶라 이름한다 작으면서 둥근 것은 여아차女兒茶라 이름한다 여아차는 부녀가 우전에 따서 얻는 것인데 곧 넉량쭝의
단차다 그 상인의 손에 들어서 겉은 잘고 속은 거친 것은 개조차改造茶라 이름한다 장차 비벼 단병을 만들때 미리 그 안의 굳세고 누러면서 말리지
않은 것은 택한 것을 금옥천金玉天이라 이름하고 그 굳게 맺어 풀리지 않는 것을 흘답차라 이름하니 맛이 극히 두텁고 얻기 어렵다 차를 씨뿌리는
집은 김매어 때가 이르기를 준비하는데 곁에 초목이 나면 맛이 열등해 팔기 어렵다 혹 다른 물건과 그릇에 같이 하면 그 기가 물들어 마시기를
감당치 못한다
*물론 이석 또한 남송시대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가 쓴 속박물지의 은생부의 차에 대한 내용은 직접 견문이 아니고
당나라 함통년간 무렵의 운남을 견문한 한 기록을 그대로 옮겨 실은듯하다 아마 단췌가 이석의 기록을 당나라때 것 처럼 본 것도 그 글이 주로 남송
이전의 사실이 기록된 기존의 서지에서 끌어 따모아 옮겨적은 성질의 것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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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의 진차에서
진차
운남부에 속한
태화차
(태화산太華山에 난다 색과 맛이 모두 송라차 비슷한데 성질이 비교적 차다)
대리부 감통차
(태화太和의 감통사에
난다)
초웅부 아차, 보이부 차
(유락, 혁등, 의방, 망지, 만전, 만살 여섯 차산에 나느데 의방, 만전 것의 맛이 비교적
낫다)
곡강부 차열매
(떨기로 나서 홀잎인데 열매는 기름 만들수 있다)
보이부 녕이현에 여섯 차산을 유락이라 말하니 곧 지금
동지同知의 다스리는 곳이다 그 동북의 250리를 망지라 말하고 260리를 혁등, 340리를 만전, 365리를 의방, 520리를 만살이라 말하는데
산세가 연속해서 산마루가 중복하고 멧부리가 층층으로 모두 차나무가 많다
*먼곳으로 장기간 수송되는 데는 기미가 센 운남 교목차가
적합한 바 있어 장기간 수송되는 과정에 차가 삭으면서 기미를 충분히 지닐수 있기에 청나라때 북쪽 연경이나 티벳등의 먼곳에 환영적으로 수요될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티벳이나 몽고등의 유목민들이 괴혈병의 방지로 차가 없을수 없었다는 등의 사정으로 보아서도 역시 당시 보이차는 지금
우리가 흔히 시중에서 보는 70년대 이후 새로운 방법으로 만든 보이차라는 것 처럼 그렇게 짙은 적갈색이나,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푹 썩힌 차와는
다르게 최소한 어느정도 엽록소의 비타민을 지닌 차였던 것으로 보일뿐 만 아니라 오히려 교목차가 더 이러한 성질을 유지할수 있기에 멀리
수요되었을지도 모를 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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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훈의
진남문견록,
단차가 보이부에 속한 사모 지방에서 나니 차산이 극히 넓다 오량캐사람이 관리해 업을 하는데 채적해서 불에 배화하고
단병으로 제법해 이뤄 객상에게 판매하고 관에서 과세해 거둔다 매년 토산 공납품으로는 단차가 있고 고차膏茶가 있는데 사모현의 지사가 이 일을 이어
받아 단병을 만들게 하니 크고 작기가 한결같지 않으며 모두 굳고 무거운 것이 세품이 되고 가볍고 엉성한 것은 잎이 거칠고 맛이 박하다 그 차가
능히 먹이를 풀고 적체를 제거하며 바람에 차운 것을 흩으니 가장 유익한 물건이다 다려 마시면 맛이 가장 농후해서 다른차에 비교해 홀로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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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제법
說略
청나라 등실 편집, 정예총서에서,
1, 채적
중국 소산의 차가 곡우에서 하지에 이르기까지 열흘지간의 시간에
채촉 되어 차호가 바쁘고 급히 종사해 많이 얻는데 탐하고 정제한 것을 구하는 것은 드물며 그 잎의 대소와 싹의 강약을 막론하고 모조리 따서
혼잡히 섞이니 순수하기가 드물다 채적이 제일의 요점인지 모르니 만부득 그 잎을 삼가 가리지 않을수 없다 차따기는 당연히 차례가 있다 너무 이르면
맛이 부족하고 좀 늦으면 잎이 이미 늙는다 먼저 볕를 향한 가지를 따라 그 잎의 살찌고 여린 것을 따서 취한다 단지 그 잎을 취하고 그 싹을
해치지 않으니 싹은 또 다음 차례에 잎을 내어 잎이 가지런하면 다시 딴다 이 같이 하면 차의 질이 이미 순수하고 차맛도 두텁다 비록 선후가
있어도 절대 들쑥날쑥 그르지 않게 해서는 안된다 이 같이 하면 또한 능히 차나무의 상하지 않음을 보장한다
2권엽卷葉
중국차는
종전에 손으로 비벼 마찰하고 인도와 실론은 모두 기계를 사용해 롤러에 눌렀다 그 우리 중국차의 이익을 능히 빼았음은 바로 이 까닭이다 대개
기계의 롤러에 눌린 차는 순수하고 정제되어 탕즙의 안이 짙고 윤나 가히 사랑스럽다 수년전에 온주에서 일찌기 이 기계를 구해 제차하니 이미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악주의 도독이 여기에 보는 눈이 있어 순순히 권고했으나 끝내 응하는자 없었다 그 연고는 중국 각 성의 차가 모두 차호가 채차하는데
말미암아 두룩 말아 이루어 상인에게 주어 팔고 상인은 잎을 마는 일에 관계치 않고 차호는 또 무력히 핍박되니 어찌 능히 이 무거운 기계를
구입하리 지금 이미 인도와 실론의 차에 대항해 제차하기로 하였으면 급히 개량하지 않을수 없다 차호는 단지 전적으로 채적을 맡아 깨끗하고 푸른잎을
가려 상인에게 팔고 무릇 제조의 법은 모두 차상인이 스스로 요리하는데 말미암으면 롤러에 누르고 잎을 마는 기계도 하지 않을수 없다 매 일차에
능히 차 칠팔십근을 생산해 내는 기계가 은 육십냥의 값이니 그 사용법은 또한 먼저 장차 푸른잎을 사납게 쬐어 솜같이 부드럽게하고 이후 기계에
내리면 두시각의 오랜후에는 자연 가닥이 당기고 둥글다
3 변색
차는 녹차와 홍차의 두종류가 있으나 그 실은 모두 일종의
차나무에서 나오고 단지 제조가 같지 않은데 기인한다 서양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오룡차고 다음이 홍하차, 홍매차로 모두 선홍의 광택이니 제법은
롤러에 누른 뒤에 그 색의 깊고 얕은 것을 보아 그 공기를 많이 받게한다 날 맑으면 햇볕에 두고 그늘지면 화로의 곁에 두어 그 색의 적합을
정도로 한다
4홍배烘焙
차의 향미는 전적으로 홍배의 공교함에 기인한다 그 열을 올릴때 스스로 일종의 이산유易散油가 생겨
나오도록한다 인도 실론의 차는 모두 기계로 구우니 그 차를 굽는 기계가 두가지로 일명 압피두랍부 라는 것과 일면 당사랍부라는 것으로 모두 증기를
뽑는 대롱이 있다 그래서 그 맛과 향을 흩어 잃지 않고 재의 띠끌이 없다 중국의 제차는 차호가 닩ㅘ하는 화로를 써서 화로 안에는 혹 마른
땔감으로 불질하고 혹 불결한 탄을 쓰고 또 연통을 세우지 못하면 연기가 차안에 꿰어 들어 이래서 연기의 띠끌이 잡입해 그 맛이 쉬이 날아
흩어진다 지금 인도 실론의 기계법을 모방하려면 차가 나는 땅이 높은 산의 준령으로 전운함이 쉽지 않고 할수있는 힘이 단지 모름지기 장차 홍배하는
화로를 변통하여 증기를 뿜는 기관을 설치 한다면 또한 다를바 없다 화력의 온도가 실제의 도수를 헤아림이 마땅하니 이로 확실한 파악을 구해야 한다
5성분成分
차의 우열은 그 안의 령류齡類와 향유香油 두 요소의 질에 따라 정해진다 령류는 체이니라 이름하니 바로 차잎의
정精한 것은 능히 사람의 뇌와 근육에 느껴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이 맑고 뜻이 맞게하며 향유는 이름하니 바로 차안의 이산유易散油로서 생잎에는 원래
이물질이 없고 전적으로 홍배과정에 다른 물질에 의해 화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열이 크면 증기를 따라 닳아 흩어지고 열이 작으면 화학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얼마 없으니 한사람이 일시에 홍배한 차가 향을 함유하는 수가 같지 않게 된다 반드시 매번의 차에 홍배하는 것이 수시로 변화해
나누어 그 각자 질량의 진짜 수를 얻으면 색을 이루는 것을 확실히 파악할수 있다 그런뒤 따로 표시를 해 가히 각국의 차와 더불어 확실히 비교할수
있어 이에야 우리 화물의 참 가치를 얻을수 있어 외국인의 어리석어하는 바를 이루지 않게 된다
6주정做淨
불말리기가 투철한
뒤에는 즉시 당연히 깨끗이하기를 해야 하고 이후에 상자에 장치한다 거친차를 잘게 만들고 잘은 차를 거칠게 만들어 길고 짧은 것이 접속하게 힘쓰고
절도가 정제해 거칠고 잗다랗게 고르지 못한 폐단이 없게해야 이에 능히 눈에 들어 가히 볼수 있다 그 시작에는 체로 서서히 쏠아 내고 그
자연스러운 성질에 순응해 완력을 씀이 마땅히 둥글고 느슨히 하며 지나치게 급함이 마땅잖다 지나치게 빠르면 부서진다 체질해 아래로 내리는 것은
세밀한 체에 붙이고 체질의 위에 남는것은 자루에 붙여 손으로 자루질하고 또 다시 따라서 체질하면 길고 짧은 것이 이에 나뉘어진다 그 안의 큰
쓸데없는 쪼가리는 키를 사용해 키질하고 작은 쪼가리는 풀로를 이용해 부친다 가장 거칠어 두호체 이상의 것과 극히 잘아 철판체 이하는 모두
모름지기 긁어내고 무더기에 들지 않게 한다
7성상成箱
제법해 이룬차는 외국에 운반해 파는데 수만리의 바다를 거듭 넘으니 반드시
그 맛이 오래 경과하면서도 흩지 않아야 이에 그 족히 승리를 다툴수 있다 상자껍데기가 엄하지 않고 상자판이 견고하지 않으면 모두 족히 전체의
차를 손괴한다 상자에 장치하는 날은 모름지기 장차 익은 차를 제법해 이루고 대껍질로 채우며 연피鉛皮로 싸서 그런뒤 나무상자에 못질해 넣고 밖에는
등나무 덩쿨로 묶어 드디어 긴밀히 봉해 기가 새지를 못하게 해야 비록 년해를 격고 몇달을 지나도 향기를 잃지 않아 가히 맛이 변하는 우려가
없다
이상 일곱조목을 거칠게 대강 진술했는데 홍차를 가리켜 말한 것이고 녹차를 재배 제조에 이르면 크게 요지가 또한 같고 특히 따
택한 뒤에 공기를 많이 받지 않게 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