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유정량의 茶十德 1)以茶散鬱氣 / 차로 울울한 기를 흩고 2)以茶驅睡氣 / 차로 졸음기를 몰아
내고 3)以茶去病氣 / 차로 병기를 제거하고 4)以茶養生氣 / 차로 생기를 기르고 5)以茶利禮仁 / 차로 예와 인에 이롭게
하고 6)以茶表敬意 / 차로 경의를 표하고 7)以茶嘗滋味 / 차로 재미를 맛보고 8)以茶養身體 / 차로 신체를
기르고 9)以茶可行道 / 차로 가히 도를 행하고 10)以茶可雅志 / 차로 가히 志를 정아하게 한다
류정량劉貞亮은 당나라
말의 환관으로 본명은 구문진俱文珍인데 환관인 의부義父의 성을 따라 고친 것이다 구당서 열전 환관 편의 구문진 전에 의하면 성격이 충정 강직해
의를 무릅썼다 하며 순종이 즉위하고 바로 중풍으로 조정을 돌보지 못하게 되어 왕숙문 유종원 유우석 일당이 정무를 맡아 권세를 얻어 환관의 병권을
뺏으려 하니 아무도 감히 말을 못했는데 오직 유정량이 매번 건의해 더불어 다투었다 하며 모의해 광릉왕을 황태자로 책봉하도록 건의하고 마침내
선위하도록 해서 왕숙문 일당을 모조리 몰아내고 조정을 다시 구신舊臣에게 돌리는 공을 세우고 거듭 승진해 원화8년(813)에 졸했다 위의
글은 흔히 세간에 당 유정량의 글로 알려져 있긴하나 정확한 출전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근세 새로 발견된 문서인진 몰라도 다른 옛서적에 이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 보이지는 않는듯하고 문투가 옛글과는 좀 다른듯 한게 혹은 후세의 다른 유정량의 글이거나 칭탁 또는 다듬어진것이 아닌가 싶다
아뭏든 일단 소개해 자료제시를 할뿐이니 내용이나 출전에 대해서는 쓴대로 다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알아 이해 판단해 나가길 바라며
하나 의견을 낸다면 여기서 본문 아홉번째 行道한다는 말은 다른 앞뒤 여타 조목의 문맥으로 보아도 차가 道를 행하게 할수있는 촉매적
도구道具가 된다는 뜻으로 보는게 더 타당할 것이며 그리고 이 대목은 당대의 글로는 특히 의심스러운 구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도를 말하는지 몰라도 道를 행하는 행도와 도를 닦는 수도는 다르다 차로 가히 도를 닦는다고 하면 또 몰라도 차로 어떻게 하기에 도를 행하게 한단
말인가 차마시고 삼매경까지 늦도록 잠자지 않고 참선할수있는게 수도가 아니고 행도란 말안가 혹 송때의 차맛을 깨달음에 비유하여 차가
행하는 것을 도가 행하는 것에 비유삼던 승려의 글도 아니고 이미 당나라때의 환관의 사고로 쓴 글로는 더우기 이해하기어려운 표현인
것이다 노자에서 道가 道라고 가능한 것은 두루 통하는 도(常道)가 아니라 했거니와 동차송에서도 정精, 조燥, 결潔이면 다도는 다한다
말한대로 道의 여러뜻 중에 하나인 단지 방법을 말하는 醫道니 茶道니 書道, 武道하는 원래대로 뜻으로만 쓴다면 굳이 가타부타 하기보다 용어선택의
한 경우로 볼수도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다른 인문철학의 흔히 말하는 형이상적 道와 애매모호 두리뭉실 슬쩍 혼용해 실제는 단지 행다의 다예나
다법 茶技의 다도인 단지 차 해마시는 방법을 말할뿐이다가 필요하면 제 편한대로 유리한대로 밝히지도 않고 한 문장에서도 이것도 道 저것도 道하여
들숙날숙 무상출입하여 소위 다도위에 또 다시 무슨 다도의 정신이니하고 인간의 도덕철학적 길로 道해 끌어 써 수도의 도를 이미지를 팔아 노자의
말을 어기겠다면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참고로 유가와 불가, 환관파와 관리파가 대립하던 당나라말때 왕부의 차주론에 보면 차와 술이 서로
헐뜯어 서쪽을 道(言)하고 동쪽을 설한다 하여 술이 말하는 경우는 道라고 하고 차가 말하는 경우는 說이라 했으니 이는 설이 태언兌言 즉 서쪽의
말이란 뜻이되어 불교적 설교의 입장을 암시하고 있고 道는 동쪽 興起,興仁하는 유학적 교도敎道(導)의 입장임을 의식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 이미 예기 소의少儀 편에 "道藝를 물어 말함에는, 자네는 무었무었을 습習하였는가 무었무었을 잘(善)하는가 라고 말한다"(問道藝曰
子習於某乎 子善於某乎) 했는데 이에 대한 주석에는 道는 어렵기에 익혔는가 묻고 藝는 쉽기에 잘하는가 라고 묻는 것이라 하였다 원래 일본에서 기능
기술적 방법에 까지 흔히 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역시 당나라때부터 전해진 문물에 따라 쓰여온 속언적 어투로 보이는데 중국에서는 송대 이후 도학이
차츰 정립되면서 단지 아무것이나 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닌 따로 철학적인데로 의미를 부여해 나가게 되었으나 일본에서는 그대로 당대 어투가
쓰여오고 근래서야 이것이 다른 형이상의 인문철학적 道와 혼용을 일으키게 되고 심지어 이런 보다 고급적 개념의 도를 덮어 씌워 각색하고자 하게 된
것이다
人之於禮
不可一日無也 /
사람에게 禮는 하루라도 없지 못한다 大則邦國之經綸 小則閨閤之細務 / 크면 나라의 經綸이요 작으면 규합閨閤의 잗다란 일로 有禮則治
無禮則亂
/ 禮가 있으면 다스려지고 무례하면
어지러워 雖小技亦然
/ 비록 작은 기예라도
그러하다 余暇日爲雲華之技
/ 내 여가의 날에 차거품꽃의 재주를
하는데 其中自有禮節 /
그 가운데 스스로 예절이
있으니 廢之則事亦不可行也
/ 폐하면 일 또한 행할 수
없으되 而其可取者三焉
/ 그 가히 취할것이 셋이요
可舍者三焉
/ 가히 버릴것이
셋이라 以易得之器
/ 쉽게 얻을수있는 그릇으로 與難得之寶比焉
而不恥者 / 얻기 어려운 寶物과 더불어
견주어 부끄럽지 않은
것은 所以示以富貴交貧賤也 /
富貴로서 貧賤과 사귐을 보이는
바요 其調麤食爲美味者 /
거친 음식을 조리하여 아름다운 맛을 하는
것은 所以示以不肖爲賢也
/ 불초不肖로서 현자를 하는 것을 보임이 되는
바요 其聚古物以玩之者 /
그 古物을 모아서 완상하는
것은 所以示慕古也 /
옛을 사모함을 보이는
바다 若夫垢淸器
/ 만약 깨끗한 그릇을
때묻히고 傷全物以<雁밑貝>古製者 /
온전한 물건을 손상시켜 옛작품의 가짜 만드는
것은 敎民僞也 / 백성에게
거짓을 가르침이요,
匕箸碗盞博之千金 /
숟갈 젓가락 사발에 千金을
걸고 果菜魚鳥競致珍異者
/ 과일 채소 물고기 새고기 진이珍異한 것을 다투어 취하는
것은 敎民奢也 /
백성에게 사치를
가르침이요 品評器什極口贊揚者
/ 그릇과 집기를 품평해 극구 찬양하는
것은 敎民諛也 /
백성에게 아첨을 가르침이다 舍此取彼
斟酌以用之 /
이를 버리고 저것을 취하여 짐작해 씀이 可謂善行
茶禮者也歟 /
가히 茶禮를 잘 행하는 자라
이를수있다 金玉之爲至寶 / 金玉이
지극한 보배가
되고 芻豢之爲美味.
/ 가축이 아름다운 맛이
됨은 人之所同好也 / 사람의
같이 좋아하는
바다 我則不然 / 나
이면 그러지
아니하니 以凡木爲具
/ 보통의 나무로 도구하고
以<草-早+予>栗爲羞矣
/ 도토리로 진수를 삼는다 富貴之爲尊
貧賤之爲卑 /
부귀의 존귀함이 되고 빈천의 비천이
됨은 亦人之所同然也
/ 또한 사람의 같이 그러한
바이나 我則不然 / 나
이면 그러지 않아 貴賤共席
而不相褻
/ 貴賤이 같이 자리하나 서로 만만히
않고 促膝劇談 /
서로 가까이 대좌해 마음껏
이야기해 雖臣子相俉焉 / 비록
신하와 자식이라도 서로
맞이한다 是數者
/ 이 몇
가지는 吾技之所獨也 / 내
기능(茶)만의 홀로 할수있는 바이다 質而雅
和而不流 /
바탕이로되 정아하고 和하나 흘러 빠지지
않음이 君子之交也
/ 군자의 사귐이다 孔子曰 禮與其奢也
寧儉 / 공자왈,
禮는 사치하기보다 차라리 검소한다 했으니 雖小技
其庶幾乎 /
비록 작은 재주이나 그 거의 근접하였다
백약이 좋으나 모르면 쓰지 못하며 온갖병이 괴로우나 救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지경에 救하고 살리는 방술이 있고 몰라 못쓰는 중에 알고
쓰는 묘가 있으니 사람이 감동시켜 하늘이 응함이 아니면 약과 병은 어쩔수가 없는 것이다
予壬子秋住南庵 以痢疾 委四肢忘三時 奄及旬朔
自知其必死矣 一日同入室號無爲兄 自侍親而來 與同禪懺名當仁弟 自侍師而至 擧首左右 三台分位 自知其必生矣 俄爾兄曰 我以冷茶救母幾危之際 急煎用之
弟曰我藏芽茶以待不時之需 何難用之 如言煎之 如言用之 一椀腹心小安 二椀精神爽塏 三四椀 渾身流汗 淸風吹骨快然 若未始有病者矣 由是食飮漸進 振作日勝
直至六月 往參母氏忌祭於七十里本家時 乃淸咸豊二年壬子七月二十六日也 내가 임자년(1852) 가을 南庵에 주석할때 이질로 인해 사지가 처지고
삼시세끼를 잊음이 열흘을 끌으니 스스로 그 반드시 죽을줄 알았다 하루는 깉이 공부한 무위형이라 부르는 이가 양친을 모시다가 오고 같이 승려의
일을 하는 當仁이라 이름하는 아우가 스승을 모시다가 둘이 같이 와서 머리를 좌우로 들어 목뼈의 혈을 分位해 짚어 주니 스스로 그 반드시
살것을 알았다 조금지나 무위형이 말하길 내가 냉차로 어머니의 위기의 지경을 구했으니 급히 다려 쓰라하니 당인 아우가 말하길 내가 싹차를 간직해
불시의 수요에 대비한게 있으니 쓰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 말과 같이 다리고 말대로 쓰니 일완에 복심이 조금 편하고 이완에 정신이 상쾌해 지고
삼사완에 온몸에 땀이 흘러 청풍이 뼈에 불어 시원하여 처음부터 병이 없는것 같았다 이로 말미암아 음식이 점차 진행해 진작振作하기 날로 나아져
바로 여섯날이 되어 어머니의 칠십리 본가 기제사에 가서 참례한 때가 곧 청나라 함풍이년(1852) 임자 칠월 이십육일이다
聞者驚之
見者指之 口+于茶在地人在天 天地應與 藥在兄病在弟 兄弟感與 何神效之如此 以茶救母 以茶活弟 孝悌之道盡矣 傷心哉 病不甚重 何知必死 情不甚厚 何知必生哉
可知其平生情分之如何 而記示其後來有可救之道 而不可救之流 듣는자는 놀라고 보는자는 가리켰다 아! 차는 땅에 있고 사람은 하늘에 달린것 천지가
응하여 주고 약은 형에게 있고 병은 아우에게 있으니 형제가 감응하니 어찌 신효의 이같음인가 차로 어미를 구하고 차로 아우를 살리니 효제의 도를
다하였다 마음아프구나 병이 심중하지 않으면 어찌 반드시 죽을줄로 알았으리 정이 심후하지 않으면 어찌 반드시 살을줄로 알았으리 그 평생의 정분이
어떠한지 알수있으며 그 이후로 가히 구할수있는 도가 있으나 구하지 못하는 류가 있음에게 적어 보인다
*茗虞: 이는 글을 합집해 주는 것임을 나타내는 듯한 책의 목록격인 合付 편으로 그런데
가만보면 유독 茶記만 著라 하였다
<茶記> 茗虞: 원본의 목록을 영인한것을 보면 목록 네번째 茶記가 全義李 著라
되었다 한편 초의 동차송에 인용해 나오는 東茶記라는 것에 대해 1918년 출판으로 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서 이후 흔히 다산의
저서였다고 소개 전해져왔으나 가만보면 이는 어디에 근거해 나온 주장인지는 모르겠다
포백숙속 토지지소생 이자유상수자야 부재어관
필재어민 소취즉국용부족 다취즉민생도현 布帛菽粟 土地之所生 而自有常數者也 不在於官 必在於民 少取則國用不足 多取則民生倒懸 (베와 비단
콩,조는 토지에서 나는 바로 스스로 일정한 수량이 있는 것으로 관에 있지 않고 백성에게 있음이니 적게 취하면 나라의 쓰임에 부족하고 많이 취하면
민생이 거꾸로 매달리게 된다)
금은주옥 산택지소산 이잉어궐초 유감이무증자야 金銀珠玉 山澤之所産 而孕於厥初
有減而無增者也 (금, 은, 구슬과 옥은 산과 못의 소산으로 그 처음에서 배태해 나와 감함이 있고 증가함은 없는
것이다)
<관>어진한 상사황금 율이배천근위개 <文+見>於秦漢
賞賜黃金 率以百千斤爲槪 (진나라 한나라 때를 보면 상주어 하사에는 황금을 써 비율이 대략 백,천근으로 하였다) *명우:
<文+見>은 동차송에 보면 觀으로 쓰여 이와 같은자로 썼음을 알수있다
지어송명지제 백금이량토 고금지빈부 어사견의 至於宋明之際 白金以兩討 古今之貧富 於斯見矣 (송나라와 명나라 사이에 이르러는 백금을
냥으로 토색했으니 옛과 지금의 가난과 부가 여기서 보인다)
*명우: 박金+白<플라티늄platinum,Pt>이 전하기 이전의 백금은 은의 별명으로 쓰였다
금유비포백숙속지위민소천
금은주옥지위국소부 今有非布帛菽粟之爲民所天 金銀珠玉之爲國所富 (지금 베,비단,콩,조의 백성이 하늘로 여기는 바가 아니고 금,은,주,옥의
나라가 부로 여기는 바도 아닌것으로)
득어황원극지 자개자락지간 초목가이선국가유민생 즉하가이사재재리 이막지언야 得於荒園隙地
自開自落之間 草木可以禪國家裕民生 則何可以事在財利 而莫之言也 (거친동산의 틈, 스스로 열리고 스스로 떨어지는 사이에서 얻어 초목이 가히
국가를 선禪하고 민생을 여유롭게 한다면 어찌 가히 이로 사事가 財利에 있으면서 말하지 않을수 있으랴) *명우:설문해자에는 禪이 祭天이라
했는데 이후 封은 흙으로 단을 봉해 쌓아 제천하는 것을 말하고 禪은 터를 깍아 펴 닦아 山川에 제사하는 것을 말한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대체로
禪은 하늘과 상대적인 토지신에 제사하는 것을 말하는듯 하나 그렇더라도 결국 봉선으로 같이 겸행되기 마련일 것이다
차자
남방지가목야 화어추 이아어동 아지눈자왈작설 조 <취>
기로자왈명,
<설>, <가>,
<천> 茶者 南方之嘉木也 花於秋 而芽於冬 芽之嫩者曰雀舌,鳥<嘴-口>
其老者曰茗,<草-早+設>,<木+賈>,<草-早+舛> (차란 남방의 가목이다 가을에 꽃하고 겨울에 싹나 싹의
여린것을 작설,조취라 말하고 그 늙은 것을 명,설,가,천이라 말한다) *명우: 먼저에 빠진
<草-早+設>,<木+賈>,<草-早+舛>을 보충 * 작설은 차가 처음 싹나 아직 잎이 펴지지 않은 바늘 같은
꼴을 두고 참새의 혀와 같다 해서 작설,조취라고 부르는 이름이 비롯된 것이고 茗은 특히 잎이 퍼진 늙은 것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작설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차나무 차를 말하는 일반명사로 쓰였으며 茗 또한 특히 의가에서는 차가 원래 쓴냉이를 말하는 것과 구별하여 차나무의 것을 말하는
일반명사로 쓰이고 있다)
저어신농 례어주관 강자위진침성 력당지송 인교점진 천하지미 막상언 이천하역무불음차지국 著於神農 例於周官
降自魏秦浸盛 歷唐至宋 人巧漸臻 天下之味 莫尙焉 而天下亦無不飮茶之國 (신농에서 부터 드러나고 주관에 열거 되었으며 위나라 진나라에서 부터
내려와 점점 성해 당을 거쳐 송에 이르러 인공의 교묘가 점차 달려져 천하의 맛이 더 숭상할수없이 되어 천하에 또한 차를 마시지 않는 나라가
없다) *명우: 例는 잡지에서 음이 "열"로 되어있으니 列이 잘못 例로 오식된것이거나 例의 음을 잘못 읽은
것이다
북로최원어차향 기차자 무여북로 이기장시 <위>육
배열불감고야 北虜最遠於茶鄕 嗜茶者 無如北虜 以其長時<食+委>肉 背熱不堪故也 (북쪽오랑케가 가장 차향茶鄕에서 멀지만 차를
좋아하는 자가 북쪽오랑케 만함도 없다 그 장기간 고기를 먹어 등에 열이 감당치 못하는 까닭이다) *명우: 먼저 빠진 글자
<食+委>를 보충, 먹일위,주릴뇌
유시 송지무료하 명지무산관 개이시이위지이 由是 宋之撫遼夏 明之撫三關
皆以是而爲之餌 (이로 말미암아 송나라가 요나라와 서하를 무마하고 명나라가 세관문밖의 오랑케를 대함이 모두 이로 먹이했다) *명우:
명나라때의 三關은 보통 성화11년에 설치한, 편두관偏頭關, 영무관寧武關, 안문관雁門關의 지금 산서성에 있는 산서삼관을
말한다
아동산차지읍 <편>어호령재 我東産茶之邑
<彷-方+扁>於湖嶺載 (우리 동쪽의 차가 나는 읍이 호남과 영남에 두루 실리고) *명우: <彷-方+扁>을 보충,
遍과 뜻이 같음
중국지차 생어월절도만리지외 연유취이부국어융지화 中國之茶 生於越絶島萬里之外 然猶取而富國禦戎之貨 (중국차가
절해고도의 만리밖을 넘어 나는데 오히려 취해 부국하고 적을 막는 재화로
하나)
아동즉산어 <파>리계
이시약토회무용지물 병여기명이망지 작차설일편 조례차사우좌 이위당국자 건백조시지운이 我東則産於<竺-二+巴>籬階 而視若土灰無用之物
幷與其名而忘之 作茶說一篇 條例茶事于左 以爲當局者 建白措施之云爾 (우리 동국은 울타리,계단에서 나지만 보기가 마치 재흙의 무용지물로 하고
아울러 그 이름과 함께 잊어 버리니 茶說 한편을 지어 茶事를 왼쪽에 조례해 이로 당국자가 건의해 아뢰어 조치해 시행으로
삼는다 운운) *명우: 먼저 빠진 <竺-二+巴>,而를 보충
일 차유우전 우후지명 우전자 작설시이 우후자
즉명 <설>야 一 茶有雨前 雨後之名 雨前者
雀舌是已 雨後者 卽茗<草-早+設>也 (하나, 차는 우전과 우후의 이름이 있어 우전차란 작설차가 이것이다 우후차란 곧 명(茗),
설이다) *명우: 먼저 빠진 <草-早+設> 보충
차지위물 조아이만줄 고곡우시차엽미장 수지소만망종
방능줄대 茶之爲物 早芽而晩茁 故穀雨時茶葉未長 須至小滿芒種 方能茁大 (차의 물건됨이 일찍 싹나 늦게 줄뻗는다 그러기에 곡우때는 차잎이
자라지 않아 모름지기 소만과 망종에라야 능히 크게 뻗는다)
개자랍후지우전 자우후지망종 개가채취 혹이엽지대소 위진응지별자
기구방상마지편야 盖自臘後至雨前 自雨後至芒種 皆可采取 或以葉之大小 爲眞膺之別者 豈九方相馬之偏也 (대체로 납월에서 우전에 이르기까지와
우후에서 망종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채취할수있는데 혹 잎의 크고 작음을 참과 가짜의 분별로 하는 것은 어찌 九方에서 각기 말을 보는것의
치우침하랴) *명우: 먼저 빠진 盖를 보충함. 잡지에는 <恭-心+皿>을 "성할앙"의 오자라 하였는데 共밑에 皿은 盖의 이체자다
*採를 원래대로 采로 했으니 이하에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빠진 가슴응膺 자를 보충하고 至를 원문대로 之로 했는데 膺은
가짜안<雁밑貝> 자의 오자로 보여 해석은 이로 했다 *본항목의 뒷구에 빠진자가 하나 있거나 혹 偏이 두루 遍이 아닌가
한다 * 차따기를 구분하는 법은 대체로 날자와 트는 싹의 형태 이 두가지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우전,우후 이런 날자구분 보다
작설이라해서 형태로 구분하는 방법을 취해왔는데 여기서는 날자로 구분하는방법을 우선한 것이다 그러나 시일로 구분하는것은 지역에 따라 같은날이라도
트는 정도가 다르며 같은 장소에서도 해마다 싹트는 날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제일 큰 문제가 있다 다만 먼저 돋은 것만 차로 쓸만하다는 것은
말대로 치우쳐 바람직하지 못할수있다
일 차유일창일기지칭 창즉지 이기즉엽야 약위일엽지외불감채 즉형주옥천사차 이대여장 위희기지물
범초목지시생 일엽대어일엽 점성기대 기유일엽돈장여장호 一 茶有一槍一旗之稱 槍則枝 而旗則葉也 若謂一葉之外不堪采 則荊州玉泉寺茶 以大如掌
爲稀奇之物 凡草木之始生 一葉大於一葉 漸成其大 豈有一葉頓長如掌乎 (하나, 차에는 일창일기의 일컬음이 있다 槍은 곧 가지고 旗는 잎이다 만약
한잎일때 외에는 따기를 감당치 못한다 할것 같으면 형주 옥천사의 차는 크기가 손바닥만 하여 드물고 기이한 물건이 되었으니 무릇 초목의 비로소
남에 한닢이 한닢에서 크져 점차 그 큼을 이루니 어찌 한닢이 갑자기 손바닥만히 자람이 있으랴 ) *명우: 먼저 苦로 오식된 것을 若으로
고침 *이백의 시에 나오는 선인장차는 한잎이 선인장 같다는 말이 아니고 가공한 차떡이 손바닥만하다는 말인데 미처 이점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차견박차 경유수촌장 엽유사오련철자 개일창자 위초줄일창 일기자 위일지지엽야 차후지상생지 즉시불감용의 且見舶茶 莖有數寸長
葉有四五連綴者 盖一槍者 謂初茁一槍 一旗者 謂一枝之葉也 此後枝上生枝 則始不堪用矣 (또 선박의 차를 보면 줄기가 몇치 길고 잎이 너댓개 연이은
것이 있다 대체로 일창이란 것은 처음 뻗은 일창(一枝)을 이름이고 일기란 것은 一枝의 잎을 이름이다 이후에 가지위에 가지가 생기면 비로소 감당에
쓰이지 못한다 *명우: 문맥으로 보아 뒤의 一槍은 一枝를 착오해 적은 같다
일 차유고구사,만감후지호 우유이천하감자무여차 위감초
차지고즉부인개능언지 차지감즉위기지자지설 一 茶有苦口師,晩甘候之號 又有以天下甘者無如茶 謂甘草 茶之苦則夫人皆能言之 茶之甘則謂嗜之者之說
(하나, 차에는 고구사,만감후라는 호가 있고 또 천하에 단것은 차같음이 없다해서 감초라고 이른다 차의 쓴것이라면 사람마다 모두 말할수있다
차의 단것이면 기호하는자의
설이다)
근인채취 <편>상제엽
독차이설 <지>지 유고담밀수지우자 시신고인명물지의비구 <연>야 近因采取
<彷-方+扁>嘗諸葉 獨茶以舌<舌+氏>之 有苦淡蜜水漬遇者 始信古人命物之意非苟<月+犬>也 (근래 채취로 인해
두루 여러잎을 맛보는데 홀로 차는 혀로 핱으면 쓰고 담함이 있어 꿀물로 담군것을 만남이 있어 비로소 옛사람의 물건에 이름한 뜻이 되는데로가
아님을 믿는다) *명우: 먼저 빠진 <彷-方+扁>,<舌+氏>,然 세글자를 보충함 月+犬은 然의 이체자로도
쓰인다
차시동청 십월간액기방성 장이어동고엽면지감 우연 의욕차시채취전고 불구우전,우후 이미과연전고 실동인지억료경주자
미고지감약용의(왜국향차고 당이별론 아동소조 최로망) 茶是冬靑 十月間液氣方盛 將以禦冬 故葉面之甘尤然 意欲此時采取煎膏 不拘雨前,雨後
而未果然煎膏 實東人之臆料硬做者 味苦只堪藥用矣(倭國香茶膏 當以別論 我東所造 最鹵莽) (차는 겨울에 푸른것으로 시월달에 액의 기가 막 성해
장차 이로 겨울을 나기에 잎면의 달기가 더욱그런듯 하다 생각에는 이때 채취해 다려 고우고 우전, 우후에 구애되지 않을 것이나 과연 다려 고아
봄은 않았으니 실로 동쪽사람의 억측해 굳이 만든 것은 맛이 쓰 단지 약용에 감당할 뿐이다((왜국의 향차고는 당연히 따로 논하고 우리 동쪽의
만드는 바는 가장 거칠고 멋대로다))) *명우: 차잎을 고아 膏를 만드는 데는 겨울것이 나을수있지 않을까하는 아직 굳이
애써 만들어 보지는 않은 가설을 소개하고 있다
일 고인운 묵색수흑 차색수백 색지백자 개위병차지입향약조성자 월토용봉단지속
시야 一 古人云 墨色須黑 茶色須白 色之白者 蓋謂餠茶之入香藥造成者 月兎龍鳳團之屬 是也 (하나, 고인이 이르길 먹색은 모름지기 검고
차색은 모름지기 희야한다 했다 색의 흰것은 대체로 떡차의 향약을 넣어 조성한 것을 말한다 월토,용봉단에 속함이
이것이다)
송지제현소부 병차이옥천칠완 즉내엽차 엽차지공효이대 병차불과이미향위승 차전정후채 이차초기 즉불필구기법
이조성자야 宋之諸賢所賦 餠茶而玉川七椀 則乃葉茶 葉茶之功效己大 餠茶不過以味香爲勝 且前丁後蔡 以此招譏 則不必求其法 而造成者也 (송나라
여러 현자가 글 지은바는 병차인데 당나라 옥천의 칠완시이면 이는 엽차로서 엽차의 공효가 이미 큰데 병차는 맛과 향으로 나은것에 불과하고 또 앞에
정위 뒤에 채양이 이어 이로 꾸지람을 불렀음인즉 반드시 그 법을 구하여 조성한 것은 아니다) *명우: 이 역시 이해부족이 있다 채양이
비난을 들은 것은 차를 잘못만들어서가 아니라 너무 극품을 만들어 정사를 받들어 펴는 대신으로서 어찌 그런것으로 위에 맞추는데 힘쓰느냐는
뜻이었다
일 차지미 황로직영차사 가위진지의 병차이향약합성
후용거륜연말입탕 <별>시일미
사비엽차지비 一 茶之味 黃魯直詠茶詞 可謂盡之矣 餠茶以香藥合成 後用渠輪硏末入湯 <吳-天+力>是一味 似非葉茶之比 (하나,
차의 맛은 황노직이 읇은 차의 시사가 가히 다했다고 할수있다 병차는 향약香藥으로 합성해 뒤에 약연을 사용 가루로 갈아 탕에 넣으니 따로 이
일미는 엽차가 비길바는 아닌듯하다) * 명우: 먼저 빠진 <吳-天+力>을 보충. 別의 이체자임 * 황산곡은 송대에 가장
차를 많이 읊은 문사다 비록 용봉단은 아니지만 당나라때에도 일반적 음차방식은 그냥 삶거나 명나라때 같은 싹잎을 우려내는 포차식이 아니고 찻가루를
타서 삶는 것이었다
연옥천자 양액습습생청풍 즉하상용향약조미재 당인역유용강염자 파공소
<신>이향시일귀가연석용밀화차이진 일석찬송불용구 진소위향태옥밀자야 정감발거오중수육자우사당 然玉泉子 兩腋習習生淸風 則何嘗用香藥助味哉
唐人亦有用薑鹽者 坡公所<口+西>而向時一貴家宴席用蜜和茶而進 一席讚頌不容口 眞所謂鄕態沃蜜者也 正堪撥去吳中守陸子羽祠堂 (그러나
옥천자의 양 겨드랑이에 살살 청풍이 생긴즉 어찌 일찌기 향약으로 조미한 것이랴 당나라사람도 생강과 소금을 쓴자가 있어 소동파공의 비웃은 바로서
일전에 한 부귀가의 연석에 꿀을 써 차에 고루어 내니 온 한자리가 찬송해 입에 머물지 않았으니 참으로 소위 鄕態의 꿀을 부은 것이다 정히 오
지역 안에 지키는 육우사당을 빼내는데 감당한다) *명우: 여기서 玉泉子의 泉은 川의 오자다 *먼저 빠진 <口+西>을
보충 *단맛을 내기 위해 찻물에 소금을 첨가한 사람은 이미 다성이라는 육우부터이라 하며 뒤에 소금을 넣지 않게 됨은 그것도 순수한 차맛을
지키기 위해서라기 보다 의설에 의하면 자극이 신장에 바로 들어 해롭다는것이다 차맛을 지키기 위해 다른것을 가미하는 것을 배격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때 채양무렵부터가 본격적이라 할수있다 그러나 이것도 또 명나라때 와서는 병단차 자체가 가공된 것으로 엽차에 비해 순수한
차맛이 아니라는 주장이지만 결국 보면 소금이나 꿀 대신 맛이 여린 극세품의 차싹을 가지고 가공 변질시키거나 묽게 우려내어 마실뿐이니 한편 이
모두 업어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라고도 할수있으며 오히려 차의 본질에서 멀어진 비난은 피차 피할수 없다고도 할수있으니 이를 두고 너무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꿀과 단맛내는 효용이 비슷한 설탕을 가미하는 일은 옛날에도 더러 있었고 차에 꿀을 넣는 것에 대해서 의가의 설은
구체적으로 찾지는 못했지만 한편 이는 굳이 가타부타 말할만한 사안이 아니었기에 그럴수 있고 지금 서양의 홍차에 설탕을 타기도 하는 것 처럼 앞에
향태鄕態라고 말한대로 이미 우리민간에도 더러 그렇게 음료해 왔던 것으로 보이며 한편 차의 전신이 되는 쓴냉이(상추)는 꿀에 넣지 않는다는 당나라
손사막의 의설醫說이 있다 그러나 후세 의가의 다른 설에 의하면 지금 쓴냉이를 꿀에 절여 먹는 사람들이 많으나 해를 입는 것은 보지
못한다했다
일 차지효 혹의동차불급월산 이여 <관>지 색향기미 소무차이 차서운
륙안차이미승 몽산차이약용 동차개겸지의 약유이찬황육자우 기인즉필이여언위연 一 茶之效 或疑東茶不及越産 以余<文+見>之 色香氣味
少無差異 茶書云 陸安茶以味勝 蒙山茶以藥用 東茶盖兼之矣 若有李贊皇陸子羽 其人則必以余言爲然 (하나, 차의 효능은 혹 동차를 의심하여 월주산품에
미치지 못하는가하지만 내 관점으로는 색과 향 기미가 조금도 차가 없다 다서에 이르길 육안차는 맛으로 낫고 몽산차는 약으로 사용한다 하나 동차는
대체로 겸했다 만약 이찬황과 육우가 있으면 그 사람인즉 반드시 내말로 그렇다 하리라) *명우: 먼저의 藥勝을 원래대로 藥用으로 하고 六도
陸으로 하며 끝에 덧붙인 어조사 也도 茶記 원래대로 뺌 *이 조목에서 법진본에는 蒙山茶以藥用 구절이 필사때 누락된 것을 페이지의 방격方格
위에 추기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뒤에 빠진것을 알고 기억으로 추기하며 대본과 글자의 異同이 생기게된 것일수 있고 반대로 대조되어 추기하며 대본과
더 정확이 기해진 것일수 있으나 지금 단정하지는 못한다 *동차송에는 이구절을 인용하여 "만약 이찬황 육자우가 있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내
말로서 그렇다 하리라"라고 했는데 여기는 則자가 하나 더 있어 "그 사람이면 반드시 내말로서 그렇다 하리라"가 되어 동차가 몽산약 육안맛을
겸했다는 평에 대해 이론異論이 많았다는 듯이 암시되고 있다
일 여어계해춘 과상고당 음료양사인임모소기차 이엽소무창
상시초소위문뢰이채자야 一 余於癸亥春 過尙古堂 飮遼陽士人任某所寄茶 而葉小無槍 想是樵所謂聞雷而采者也 (하나, 내가 계해년 봄에 상고당을
지나다가 요양遼陽의 사인士人 임아무개가 준 바의 차를 마셨는데 잎이 작고 창이 없어 생각에 이는 孫樵가 소위 말하는 우레를 듣고 딴것이라
생각했다) *명우:이글의 작자가 만약 정약용일 경우라면 계해년은 정약용이 마흔두살때인 1803년이 된다 이로서 사십년 뒤이면 1843년인데
정약용의 생몰은 1762-1836년이니 상고당에서 차를 마신 이글의 작자는 다산이 아니게 되며 상고당은 조선후기 골동수장과 감상가로 알려진
김광수(1696~?)의 택호로 보여지는데 그러면 계해년은 1743년의 계해년으로 보인다 여기서 사십년 뒤이면 1783년 계묘년이 되는
것이다
시방춘삼월 정화미사 주인설석 송하상대 방치차로 로관개고동이기 각진일배 時方春三月 庭花未謝 主人設席 松下相對 傍置茶爐
爐罐皆古董彛器 各盡一杯 (때는 막 춘삼월로 정원의 꽃은 지지 않았는데 주인은 자리를 베풀고 솔아래 서로 대해 곁에는 차화로를 두고 화로와
다관은 모두 골동의 이기彛器로서 각자 한잔을 다했다) *명우: 먼저 빠진 董,彛 두자
보충
적유로 <겸>환감자
주인명음수배왈 시가이료감기 거금사십여년 適有老<謙-言+人>患感者 主人命飮數杯曰 是可以療感氣 去今四十餘年 (마침 노인이 겸해
감기를 우환하는자 있어 주인이 몇잔 마시라 명하여 말하길, 이는 가히 감기를 치료한다 했으니 지금으로 사십여년이다) *명우: 먼저 빠진
<謙-言+人>을 보충
기후박차래인 우이설리지당제 금여소채자
비단 <편>시한서감기 식체,주육독.훙복통
개효 其後舶茶來人又以泄痢之當劑 今余所采者 非但<彷-方+扁>試寒暑感氣,食滯,酒肉毒,胸腹痛 皆效 (그뒤 선박의 차에 온
사람이 또 설사 이질의 마땅한 약제라 하고 지금 내가 딴 것은 비단 차고 더위의 감기에 두루 시험함이 아니라 식체,酒肉毒,胸腹痛에 모두
효험하니) *명우: 먼저 빠진 <彷-方+扁>을 보충 함 *영남의 죽림차이야기를 들었다는 뒷조목의 내용으로 보아 작자는
호남에서 직접 차를 따본 사람임을 알수있다 글이 큰 깊이나 문체는 없이 관청에 건의하기 위한 글로서 행정서사적 조례의 형식을 갖춘데다 직접
역관은 아니나 남북으로 교제와 견문이 있는 같은 것이 財利의 일을 보는 관리나 역시 이와 관련된 약재상과 연고가 있지 않은가
한다
설리삽욕성림자지유효 즉이기리수도고야 질
<학>자지무두동 유시절유 즉이기청두목고야 泄痢澁欲成淋者之有效 則以其利水道故也 疾<疾-矢+虐>者之無頭疼 有時截愈
則以其淸頭目故也. (설사 이질에 껄꺼로움이 淋을 이루려는 것에 유효함인 즉은 그 水道에 이로움인 까닭이다 학질병자의 두통이 없이 때로
씻은듯 나음인 즉은 그 머리와 눈을 맑히는 까닭이다) *명우: <疾_矢+虐>을
보충
최후병 <려>자
초일이일열
<철>수완이병수이 병 <려>일구
이부득발한자 음첩득한 즉고금인지소미론 이여 소친험자야 最後病<疾-矢+萬>者 初一二日熱 <輟-車+口>數椀 而病遂已
病<疾-矢+萬>日久 而不得發汗者 飮輒得汗 則古今人之所未論 而余所親驗者也 (최후로, 역병하는 자가 처음 하루 이틀의 열이 남에
몇사발 마시고 병이 드디어 그치고 역병의 날이 오래어 땀을 내지못하는 자는 마시면 매번 발한함인 즉은 고금의 사람이 논하지 못한 바로 내가 친히
경험한 것이다) *명우: 먼저 빠진 <疾-矢+萬>,<輟-車+口> 두자 보충
일 여경탁주수배후 견방유랭차
만음반배입수 담즉성 타출십여일
시 <료>
익신랭즉반능취담지설 一 余傾濁酒數盃後 見傍有冷茶 漫飮半盃入睡 痰卽盛 唾出十餘日 始<膠-月+疾-矢>
益信冷則反能聚痰之說 (하나, 내가 탁주 몇잔을 기울인뒤 곁에 냉차가 있음을 보고 멋대로 반잔 마시고 잠에 들었는데 담이 바로 성해 십여일을
뱉아 내고 비로소 나아 차우면 도리어 담을 모은다는 설을 더욱 믿게 되었다) *명우: 먼저 빠진 <膠-月+疾-矢>을 보충함
음은 료,추 뜻은 병나을 료療와 같음
문표인래도야 어병중사출권객 기비랭자야 우문북역서종망지식아저구야 일수지소호
차 <담>차음 필시랭차야
상식열지후 랭역불능작 <수> 聞漂人來到也 於甁中瀉出勸客 豈非冷者耶
又聞北譯徐宗望之食兒猪灸也 一手持小壺 且<口+爪밑臼>且飮 必是冷茶也 想食熱之後 冷亦不能作<匕밑示> (듣기를 표류인이
래도함에 병속에 것을 쏟아 내어 객에게 권했다 하니 어찌 냉한 것이 아니랴 또 듣기를 북쪽 중국역관 서종망이 새기돼지구이를 먹음에 한손에 작은
호를 쥐고 먹으며 또 마신다는 것은 반드시 냉차이리라 생각컨대 뜨거운 것을 먹은 뒤엔 냉한것도 빌미가 지어지지 못함이리라 *명우: 보충한
<口+爪밑臼>은 <陷-阜+口>와 같은 자로 같은 먹을 담口+炎의 뜻임 *<匕밑示> *명우:차의
약성은 냉한하다는 것인데 그러나 이는 특히 진한 가루차로 먹게 될때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쓴 차를 마시고 치를 떨면 곧 추워 살을 떠는 것과
다를바 없게 됨을 알수있다 그래서 가루차 시절에는 특히 냉차를 꺼렸다 지금 우려마시는 묽은 차는 이에 비해 그리 구애하지도 않으며 한편 얼음이나
빙과는 차기 때문에 쓰이는 것이니 무었보다 자기 몸이나 사정에 맞춰 이용해야할 따름이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의 차 편에 매일 구운오리고기를 먹는
사람이 밤마다 냉차를 한사발씩 마심으로 구운고기의 열독을 가셨다는 말이 있다
일 차능사인소수 혹종야부득교첩 독서자,근방적자
음지가위일조 선정자 역불가소시 一 茶能使人小睡 惑終夜不得交睫 讀書者,勤紡績者 飮之可謂一助 禪定者 亦不可小是 (하나, 차는 능히
사람으로 잠을 적게 하여 혹 밤새도록 눈꺼풀이 서로 닿지 못하게 한다 독서하는 자와 길쌈하는자는 마시면 가히 일조 한다 선정하는자도 또한 이를
작게 여기지 못한다) *명우: 惑은 或의 오자인듯하여 이로 해석
일 차지생 다재산중다석처 문령남즉가변죽림처처유지 죽간지차우유효
역가어절만후채득 이기불견일고야 一 茶之生 多在山中多石處 聞嶺南則家邊竹林處處有之 竹間之茶尤有效 亦可於節晩後采得 以其不見日故也 (하나,
차의 나는 것이 흠히 산속 돌많은 곳에 있다 듣기로 영남이면 집곁의 대숲에 곳곳에 있어 대나무 사이의 차는 더욱 효능있고 또한 가히 계절이 늦은
뒤 채취해 얻을수있으니 그 햇볕을 보지 않는 까닭이다) *명우: 여기서 이제 竹林 또는 竹間之茶라 하여 대나무그늘 속에서 자란 차를
나타내는 말이 나온다 한편 이는 이때까지도 물론인 이전의 말차음용습관에 따라 기미가 여리고 순한 싹을 내기 위해 그늘을 씌우기도 하는데서
비롯하는 것으로 우려 마시는 잎차에서는 사정이 다를수있다
일 차지채 의어우여 이기눈정고야 파시운 세우족시차호희 一 茶之采
宜於雨餘 以其嫩淨故也 坡詩云 細雨足時茶戶喜 (하나, 차의 땀에는 비온 나머지가 마땅하다 그 여리고 깨끗한 까닭이다 동파시에 이르길
가는비가 족한 뒤에 茶戶가 기뻐한다 하였다) *명우: 갈수기에 비가 오면 여리고 부드러운 차싹이 일시에 쑥 돋으니 차를 따는 입장에서는
좋아했겠으나 그러나 혹 가루차도 아니면서 맛에 있어서는 일률적으로 말할수없다 더구나 많은비는
○안문헌통고 채차지시 현관친자입산
사민지로유남녀 <편>산피구
채철증배 선이수채이정자위공차 기차위관차 여즉허민자취 개차리심대 유관국가여차 ○按文獻通考 采茶之時 縣官親自入山 使民之老幼男女
<彷-方+扁>山披求 采綴蒸焙 先以首采而精者爲貢茶 其次爲官茶 餘則許民自取 盖茶利甚大 有關國家如此 (○문헌통고에 감안해보면 차딸때는
고을의 관리가 직접 스스로 산에 들어가 백성의 늙고 어리고 남자 여자가 두루 산에 깔려 구하게 하여 따서 찌고 배화 하는데 먼저 맏물로 따 精한
것을 공납차로 하고 그 다음은 관용차로 하고 나머지면 백성이 스스로 취하게 하니 대체로 차의 이익이 심히 커 국가와 관련됨이 이
같다) *명우: 먼저 빠진 <彷-方+扁>을 보충. 이을 철綴은 딸 철(輟-車+手>의 오기로 보인다
일
차서우유편갑자 조춘황차 이박차지래 거국칭이황차 연기창기이장 결비조춘채자 미지당시표래인 과득전명여차부 一 茶書又有片甲者 早春黃茶 而舶茶之來
擧國稱以黃茶 然其槍旗已長 決非早春采者 未知當時漂來人 果得傳名如此否 (하나, 茶書에 또 편갑이란 것이 있고 조춘의 황차이나 선박의 차가
오면 온나라에서 황차라 일컫는다 그러나 그 창과 기가 이미 자라 절대 조춘에 딴 것이 아니다 알수없다 당시 표해漂海 해온 사람이 과연 이름을
전함이 이 같지 않았는지) *명우: 조선후기 조재삼(1808-1866)의 송남잡지에, 해남에 옛날엔 황차가 있었는데 세상에 아는 자가 없고
오직 정약용이 알기에 정차라 이름하고 또 南茶라 한다.(海南古有黃茶 世無知者 惟丁若鏞知之 故名丁茶又南茶)하였으니 송나라때의 차서에 차의 찌거나
삶은 것을 황이라 한다하였는데 이는 건조시설이 지금과 같지 못한 종전에 차를 찌면 고대 변황되기 마련인데서 비롯한 말로서
어쨌거나 이로보면 이미 고려시대부터 황차라는 이름이 전해진 것으로 볼수있고 한편 종래 우리차를 작설차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수입되는
차를 황차라고 불렀으니 이는 중국에서는 대체로 명나라 이후 특히 강남의 관목차 산지에서는 뜨거운 솥에 가공한 과배차가 많이 쓰였으나 멀리 외지로
수송하는 차는 대개 가공형태가 찐 것으로 청나라때 티벳 몽고 등지로 수송되던 운남의 보이차나 호남의 천량차와 같이 찐 황차였다 보이차는
벽돌형태로 지고 운반에 편리하게 가공되었고 천량차는 우리의 죽부인 같은 죽루(竹<蔞-艸+竹>) 안에 담은 차의 무게가
천냥(37.3kg)이 나가기에 천냥차인데 이로 말이나 낙타등에 두어덩이씩 싣고 멀리 수송하는 편리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런 차는 지금분류로
말한다면 자연히 홍차(흑차)에 속하게 된다
유자흑산래자언 정유동 표해인지유차수 위지황차운 유차자(속위유구차) 기내소위황매야 황매화황
선두견발 엽유삼각 여산자형 유삼<저> 경엽개대강미 협인지입산야 포포이식 각읍취기눈지전팽이대사객 차기지절취이악 위주재여약
전복즉감기상한급무영지질 미류수일자 무불발한신효 기역일종별차야 有自黑山來者言 丁酉冬 漂海人指臾茶樹 謂之黃茶云 臾茶者(俗謂臾求茶)
圻內所謂黃梅也 黃梅花黃 先杜鵑發 葉有三角 如山字形有三<竹밑助> 莖葉皆帶薑味 峽人之入山也 包飽而食 各邑取其嫩枝煎烹以待使客 且其枝截取二握
爲主材如藥 煎服則感氣傷寒及無名之疾 彌留樹日者 無不發汗神效 豈亦一種別茶耶 (흑산도로 부터 온 사람이 있어 말하길 정유년 겨울 표해 해온
사람이 유차나무(臾茶樹)를 가리켜 황차라 했다 한다 유차라는것은 ((세간에서 유구차라 이른다)) 서울지역에서 이르는 소위 황매다 황매의 꽃은
누렇고 참꽃보다 먼저 핀다 잎에는 삼각이 있어 山자 모양같이 세가닥이 있다 줄기와 잎이 모두 생강맛이 있다 골짝사람이 산에 듬에 가득 싸서
먹는데 각 읍에는 그 여린 가지를 취해 다려 삶아 이로 사신과 객을 대하며 또 그 가지를 잘라 두 줌을 취해 주로 재료가 약과 같이 하니 다려
복용하면 감기와 상한 및 무명의 질병이 오래 머물어 날을 세운 것이 땀흘려 신효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또한 일종의 別茶인가) *명우:
아兒로 되어있는 것을 원래대로 臾로 고친다 臾는 음이 유,궤,용이 있는데 "유"가 가장 잘 쓰인다 그러나 생강나무를 아기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이로보아 원래는 유臾 보다는 아兒로 쓰인것 같다 *먼저 빠진 <竹밑助>를 보충, 이 조목에 몇개 오자가 있는 같다 *
협인峽人은 혹 중국의 사천성과 호북성 사이 장강상류 일대의 좁은 골짝이 이어진 삼협三峽 사람을 말할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작자가 황매 또는 황차에
대해 잘 모르고있는 문맥상으로도 보아 단지 우리의 골짝사람이 먹는 것을 보고 나타낸 말로 쓰인 것으로 본다 *여기서 말하는 臾茶 또는
兒茶는 산야에 노란꽃이 앞서 피어 황매화라고도 일컫는 생강나무(三木+亞杓樟)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별차라는 것은 지금 대용차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게 된다
<跋記> 광서십칠년신묘하 여재두륜산중득차경열지 즉대당제현가각득현현묘묘지소술작
지약동국즉중간초의대사계진조주지현풍 어차자득묘리 겸술다송 세칭초의차 재관막불건선차송의 초의차조주차 고금수수 법무선후 어사가량 개차지위물 능제수마
능치백병 제마치병 즉선자선독자독 종종세간사 기불호재 진시구경성취 백법지묘가약야 연이차경행도가지안목 어세미삭삭유고 류월념이일잉명사우휘등
월칠일사시방토 자기권미 련담후인법진근발 光緖十七年辛卯夏 余在 頭崙山中得此經閱之 卽大唐諸賢家各得玄玄妙妙之所述作
至若東國則中間草衣大師繼振趙州之玄風 於茶自得妙理 兼述茶頌 世稱草衣茶 宰官莫不健羨此頌矣 草衣茶趙州茶 古今雖殊 法無先後 於斯可量 盖茶之爲物 能除睡魔
能治百病 除魔治病 則禪者禪讀者讀 種種世間事 豈不好哉 眞是究竟成就 百法之妙嘉藥也 然而此經行道家之案目 於世未數數有故 流月念二日仍命四友揮謄
越七日巳時放兎 自記卷尾 蓮潭后人法眞謹跋 (광서17년<1891> 신묘년 여름 내가 두륜산속에 있으며 이 經을 얻어 열람하니
곧 당나라의 여러 賢家가 각기 체득한 현현묘묘함의 述作한 바였다 동국에 이르는 같으면 중간에 초의대사가 조주의 현풍을 이어 떨쳐 차에 있어
묘리를 얻고 겸해 茶頌을 述하여 세상에서는 초의차라 일컬어 재관宰官이 이 송을 힘껏 부러워 하지 않음이 없다 초의차와 조주차가 고금이 비록
다르나 법은 선후가 없음을 이에 가히 헤아릴수 있다 대개 차의 물건됨이 수마睡魔를 능히 제거하고 온갖병을 능히 다스려 마를 제거하고 병을
다스린즉 禪하는자는 선하고 읽는자는 읽으니 종종의 세간사가 어찌 좋지 않으리 참으로 구경究竟에는 성취해 온갖법의 묘가약妙嘉藥이다 그러나 이 經은
道家의 안목案目에서 행하고 세상에 삭삭연한 연고가 없다 유월22일 그대로 四友를 결정해 취해 갈겨 등초하고 칠일을 넘겨
사시<9~11時>에 토끼털붓을 놓는다 스스로 권미卷尾에 적다 연담후인 법진이 삼가
발문함)
來時摘早茶付日+西否 / 올때 올차(早茶)를 따서 볕에 말려두도록 하지 않았는가? 曰未及
/ 말하길, 그러지 못했습니다
茶社錢穀無逋否 / 다신계의 전곡錢穀을 빼먹음이 없지 않은가? 曰然 / 말하길,
그렇습니다
古人有言云死者復生能無愧心 吾之不能復至茶山 亦與死者同 然人+尙或復至 須無愧色爲可也 옛사람의 말이 있어 “죽은자가
다시 살아와도 능히 부끄러운 마음이 없다"일렀네 내가 다산에 다시 이르지 못함이 또한 죽은 사람과 같으니 그러나 오히려 혹 다시 이르더라도
모름지기 부끄러운기색이 없어야 되네
*강진 다산에서 출발해 초여름에 정다산을 방문했으니 곡우에서 입하까지 보름기간으로 여러사람이 같이 말달려 오지는 않았을 것이니 우전차가
아니면 다산이 말한것 처럼 출발전에 따서 이를 볕에 말리도록 맡겨놓고(付日+西) 오기는 더우기 어려울 것이다 이로 보아 올차는 역시 우전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