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道美學

대숲차

무진공방주얼리 2006. 2. 10. 00:54

대숲차(竹下茶)  
사물의 이름으로 처음에는 특정한 것을 의미할뿐이던 것이 점점 개념이 확장되어 가는 것이 있으니 예를 들면 중국이라는 말은 한나라까지만해도 중원지방에 처한 몇몇 나라를 일컫는 것이었고 양키라는 말은 미국 동부일대의 한 상인집단을 가리키는 말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양이란 말은 근세에 남양 북양 서양과 함께 천하사해의 개념에서 동쪽 동해의 일본해역 쪽을 가리키는 말일 뿐인데 근년에 일본에서는 서구유럽을 서양 아시아를 동양이라는 어휘로 번역 대치시켜 동양이 마치 아시아를 대표하는 뜻의 말인것 처럼 노력 선전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 민간에 작설차, 녹차라는 말을 전통차의 통칭처럼 부르기도 하는 것은 이렇게 개념이 보편 확장된 것이다
한편 상품명을 지을때 흔히 잘알려진 일반명사에서 따 오기도 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개인상품명이 차츰 일반명사화되고 심지어는 굳어져 학술용어에 까지 오르게 되는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正宗이라는 말은 일반용어 이지만 예전에 주조업체에서 한 상품명으로 널리 채용하게된것을 계기로 민간에서 쉽게 정종이라하면 마치 청주를 대신하는 말처럼 쓰이기도했다  근년의 죽로차라는 이름이 또한 그렇다 세간에 죽로차에 대해 알려진 것을 보면 대나무밭에서 댓닢의 이슬을 받아 자란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차이기에 죽로차라고 부른다는 황당한 설명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죽로차는 불과 몇십년전에 누구가 개인 상품명으로 대밭에서 자란 차나무로 가공된 차를 두고 지어준 이름으로 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차문화가 아직 확립되지 못한데다가 대밭에서 자란차에 대한 소개나 다른 일반적 이름으로 알려져 온것이 없었기에 이후 대밭차라 하면 다른 이름없이 으례 통칭으로 죽로차라 해서 따라 부르게 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어쨌든 대나무 속에서 자란 차잎의 차가 어떤 우수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차치하고 대나무속에서 자란 차잎으로 만든 것을 단지 대밭차나 죽하차 등으로 지칭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죽로차라 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 점이 있다. 처음 작명인은 과연 대나무 이슬 때문에 죽로차라 했는지도 알수없거니와 이를 떠나 한편 남이 볼때 시기적으로나 이는 일본에서 옥로차가 유행되는데 영향을 받아 지어진 이름으로 보이니 원래 이슬 露로 이름 하는 것은 차이름으로서 예전에 있었는지도 알수없고 차보다 먼저 술이름에서 옥로춘이니 추로백, 홍로주 따위의 명주가 더러 있었으니 아마 이는 술 가운데서 증류주의 경우 재래로 청주를 데운 김을 위로 맺히게해서 이것이 소주독을 타고 똑똑 떨어지는 것을 이슬처럼 받아 만드는 것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보여지니 이로 본다면 청주에 비해 역사가 짧은 소주로서 빨라도 몇백년 전부터 일것같고 일본의 옥로차라는 것도 차이름으로 오히려 적합하지못한 점이 있다는 혐의가 있을수있다.
명대의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말하길,
"소주는 고법이 아니다. 원대에 비로소 그 법이 창조되었으니 짙은술을 술찌게미와 고루어 시루에 넣고 쪄서 기가 오르게해 그릇을 써 적로(滴露)를 받들어 취한다. 무릇 시고 헐어진 술은 모두 쪄서 소주를 만들수있다. 근래는 오직 찹쌀이나 멥쌀 혹 기장 혹 수수 혹 보리를 쪄 익혀 누룩에 고루어 독안에 칠일간 양조해서 시루에 쪄서 취한다. 그 맑기가 물같고 맛이 극히 농열(濃烈)하니 대체로 주로(酒露)다"
송의 소동파는 말하길 당나라 사람들은 명주의 이름에 春자를 붙이기 좋아했다 하였으니 이는 옛날 납월 즉 섣달이나 청명일에 술을 담궈야 술이 오래도록 맛이 변하지 않고 맛이 좋다고 여겨 각자 노주(老酒), 춘주(春酒) 이렇게 불렀던 것과 유관한 것으로 보여지니 물론 지금도 잘 알려진 한 중국차 이름에 춘자가 붙은게 있기도 하다
옛날 일본에 산본가빈위라는 차상인이 있었는데 이사람의 4대 때인 1738년 산성영곡종칠랑이라는 차만드는 사람이 있어 이사람이 일종의 좋은차를 제조해 산본씨에게 팔았는데 산본씨는 이 특이한 것을 품상하고 계약을 맺어 다시 제조하게 하니 당시 영주들이 품상하고는 하늘아래 땅위에 제일이라는 품평을 내려 이로 인해 산본씨의 이름이 크게 떠들썩해지고 이를 우치제조차라 이름하다
여기에 또 옥로차라는 것이 나왔으니 산본씨가 큰 이익을 얻고나서는 1807년경 우치지방과 철희지방 사이에 모두 80여개의 다원이 생겼는데 6대 산본씨로 덕옹이라는 자가 우치에서 소창촌에 이르러 목하길좌위라는 사람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이때 차를 불에 건조 가공할때 장난삼아 차잎을 뒤적거려 만져 둥근구슬처럼 만들어 보니 목하씨는 못마땅히 걱정했지만 덕옹은 그 상태를 기이하게 여겨중가로 사고 더욱 많이 만들게해 강호로 가져오니 이름해 옥로차라 하고 사람들이 다투어 구입해 우치차보다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아마 이는 요새도 중국차 중에 소라차럼 돌돌말리게 가공된 그런차가 일본에도 소개 전해져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런 일화가 지어진것 같은데 어쨌거나 옥로차의 이름이 처음 유래된 것은 이상과 같다
여기서 玉을 단지 광물의 한종류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슬옥이라 훈독하고 일본어에도 玉을 구슬의 뜻인 다마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즉 무슨말이냐 하면 제조된 차의 모양이 둥글기 때문에 옥로차라 하였어도 이것은 옥로에서 다마의 뜻인 옥에서 이미 말하고 있으며 마침 이슬도 둥글다고해서 옥로의 露의 뜻이 또한 이를 말하고 있다 보기는 어렵다는 말로서 이슬은 따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혹 어쨋거나 이더라도 이상으로 보아 적합치못한 혐의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밭차에 대해 고찰해 보면 일찌기 당 유우석의 서산난야시차가라는 시에,
"산에 승방의 뒤쪽 처마에 차 몇떨기가 (山僧後첨茶數叢)
봄이 오니 대나무에 비추어 새싹을 뽑는다 (春來映竹抽新茸)
.......(생략)..........
양지 벼랑과 그늘진마루는 각자 기가 달라(陽崖陰嶺各殊氣)
대나무 아래 이끼낀 땅 같지 못하다(未若竹下매苔地)
.....(생략)........
손수 따서 다리기 잠깐 나머지에
목란(목련)꽃이 이슬을 떨군것과 향이 살짝 비슷하고(木蘭墜露香微似)
마노옥풀이 파도에 임한것도 색이 이같지 않다
.........(생략)...........
하물며 몽산춘과 고저춘이(何況蒙山顧渚春)
흰진흙위에 붉은 인장을 찍어 풍진속을 달림에 있어서랴
꽃젖의 청랭한 맛을 알려면
모름지기 이는 잠든구름을 돌위에 발돋음해 보는 사람이라야 되리라"
여기 죽하차는 후의 송나라때 대관차론에서 말하는 양애음림 즉 양지의 그늘진 숲에서 음양이 조절되어 자란차에 대한 우수적관념을 이미 볼수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전기 김시습의 養茶라는 시에 보면 울타리를 짜서 그늘지어 보호해 가꾸었다고 했으며 지리산 화계사의 장죽전 이라는 대밭은 신라때 부터 차를 재배한 곳이라고 전해 오기도 하며 다경 칠지사편에 인용해 실은 이 이전의 한 일화를 보면
"어찌 차라고 합니까? 이는 감로입니다!"라고 한 말이 있으며 바로 여기 인용해 실은 앞의 유우석의 시에서도 찻물이 목란꽃에서 떨어진 이슬향과 비슷하다했다.
뿐만 아니라 당나라 사람들은 술만이 아니라 어쩌면 이는 당나라 때의 춘자가 붙은 술이름보다 앞설지도 나로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해 잘 모르지만 차에서도 이미 이렇게 몽산춘, 고저춘으로 부른것이나 다름없는 용례를 볼수있다

출처:네이버블로그 도빈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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